지난 해 출시됐다가 우여곡절 끝에 5개월 만에 사라졌던 라면이 있습니다. 라면의 대명사나 다름없는 ‘신라면’의 업그레이드 버전, 이른바 프리미엄급 라면인 ‘신 라면블랙(사진)’입니다.
제조사인 농심은 신라면 출시 25주년을 맞아 이 제품을 내놓았습니다. 무려 3년 동안 준비한 야심작이었죠. 초기반응도 좋았습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트위터 호평이 더해지며 출시 첫 달 매출 90억원을 올리며 대박을 터트리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신라면블랙은 이내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1,600원이라는 가격이 문제였지요. 마침 당시는 물가가 워낙 많이 뛰어 정부가 민간제품가격을 모조리 묶어두던 시기였는데, ‘눈치 없이’ 농심이 서민식품인 라면을 비싸게 내놓은 것이었죠.
정부는 이런 농심이 괘씸했던 모양입니다. 곧바로 공정거래위원회 조사가 시작됐습니다. ‘설렁탕 한 그릇의 영양이 그대로 담겨있다’는 신라면블랙의 광고문구를 문제 삼은 것이었죠. 공정위는 이례적으로 설렁탕 성분까지 비교 조사한 끝에, 이 광고문구가 과장이라고 판단했고 무려 1억5,000만원의 과징금을 때렸습니다. 당시 업계에선 “정부가 직접 가격을 뭐라 할 수 없으니까 광고문구를 문제 삼아 농심을 손봤다”는 해석이 파다했습니다.
농심은 8월초 1,450원으로 가격을 내렸지만, 도저히 원가를 맞출 수 없어 결국 국내 판매를 중단했습니다. 대신 수출은 계속해왔는데, 일본을 비롯한 30여 개국에서 지난 1년간 2,600만달러의 매출을 올리며 히트상품으로 자리잡았다고 합니다.
이런 사연 많은 신라면블랙이 25일 다시 국내 출시됩니다. 고급라면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요청도 많았던 데다, 이젠 물가부담에서 자유로워졌기 때문이지요.
값의 높고 낮음은 정부가 정할 문제가 아닙니다. 가격의 적정성은 소비자와 시장이 결정합니다. 품질에 비해 값이 높다고 생각되면 소비자가 먼저 외면할 것이고, 기꺼이 지불할 의향이 있다면 아무리 비싸도 팔릴 겁니다. 더 이상 라면가격까지 정부가 시시콜콜 간섭하는 낡은 행태는 없어졌으면 합니다.
고은경기자 scoop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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