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정 서울 북공고 교사
‘학생인권보호 반대, 교권보호 찬성. 균형의 상실이 너무 지나치지 않은가.’교권보호종합대책과 관련해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와 교육과학기술부를 비판한 지난달 12일 필자의 칼럼 요지다. 그렇다면 전교조는 어떤가.
교권보호종합대책에 대해 전교조가 발표한 성명서 제목은 ‘교과부, 교권보호대책에 교권이 없다’이다. 진정한 교권보호 대책이 아니란 얘기다. 그렇다면 전교조가 생각하는 진정한 교권은 무엇인가. 성명서에 따르면 교육과정편성권, 교재의 작성 및 선택의 자유, 교수방법과 내용의 선택 및 결정의 자유, 성적평가권 등이 전교조가 규정한 교권이다.
옳다. 전교조가 말한 것들이야말로 진정한 교권이다. 선진국에선 잘 보장되고 있는 권리다. 교사를 위해서가 아니다. 교육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교조는 그러한 권리를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전교조는 자신이 요구하는 권리들을 한편으론 부정하고 있다. 앞에서 얘기한 권리들은 현재의 내신제도와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인데 전교조는 현 내신제도를 강력하게 옹호하기 때문이다.
‘성적평가권’을 갖고 얘기해보자. 교사가 성적평가권을 갖는다는 것은 교사 개개인이 학생성적에 대해 평가권을 갖는 것이다. 그것의 실현은 ‘교사별 평가’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현 내신제도에서 교사별 평가는 불가능하다. 현 내신제도의 핵심 중 하나가 ‘학년별 평가’이기 때문이다. 학년별 평가는 학년전체 학생을 성적에 따라 줄 세우는 제도다. 이러한 학년별 평가의 핵심은 시험의 동일성이다. 즉 한 학년의 수업을 서너 명의 교사가 몇 개 반씩 나누어 담당하더라도 시험문제는 반드시 동일해야 한다. 그래서 학년별 평가에서는 교사 개개인이 자율적으로 학생을 평가할 수 있는 권한, 즉 성적평가권을 갖는 것이 어렵다.
그런데 시험의 동일성은 단순히 시험의 동일성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시험이 동일하기 위해선 교재가 반드시 동일해야하고, 수업의 내용 또한 대략적으로는 반드시 동일해야 한다. 결국 교사들은 교재가 반드시 동일해야 하므로 교재선택권을 가질 수 없고, 수업내용이 동일해야 하므로 교육과정 편성권을 가질 수 없다.
현 내신제도(학교시험제도)의 입시변별력은 교사로부터 이렇게 교권을 박탈한 대가로 획득된 것이다. 물론 현재의 내신제도에는 나름의 장점이 있다. 예컨대 지역 간의 교육 불평등 해소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현 내신제도에서는 서울 강남 학교의 1등과 강북 학교의 1등, 그리고 시골 학교의 1등이 모두 입시에서 똑같은 위상을 갖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 내신제도는 학교수업의 질 저하를 가져온 주범이기도 하다. 학교수업의 기본 틀이 아직도 1980년대의 학력고사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실붕괴가 문제라고 하지만 지금의 학교수업은 설사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큰 문제다. 1980년대의 저차원적인 주입식 교육이기에 설사 수업이 잘 이루어진다 해도 입시경쟁력을 갖지 못한다. 수능시험엔 약간의 도움만 될 뿐이고 논술시험에는 거의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학교수업이 발전하려면 한국의 교사도 선진국 교사들이 가진 권리를 가져야 한다. 그것은 현 내신제도의 폐지와 새로운 내신제도의 도입을 필연적으로 요구한다. 그러나 그것은 학교시험의 입시변별력을 현저히 약화시키게 된다. 전체 학생을 똑같은 시험을 통해 엄밀히 줄 세우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현 내신제도의 장점을 취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진정한 교권은 포기해야 한다. 진정한 교권을 원하는가? 그렇다면 현 내신제도를 버려야 한다. 둘 모두를 충족시킬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데 전교조는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들을 요구하고 있다. 전교조의 요구를 들어 줄 수 있는 정부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전교조가 요구하는 진정한 교권은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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