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 디자이너였던 LP애호가 서보익(41)씨는 얼마 전부터 CD로만 출시된 해외 재즈 음반을 턴테이블에 올리고 싶은 마음에 직접 LP를 만들고 있다. 재즈 베이시스트 찰리 헤이든과 기타리스트 팻 메스니가 협연한 '비욘드 더 미주리 스카이'와 재즈 기타의 세 거장 파코 데 루치아, 존 맥러플린, 알 디 메올라가 함께한 '기타 트리오', 존 맥러플린의 솔로 앨범 '더 프로미스'를 지난달 500장씩 국내 출시했다. 앨범이 발매된 국가에서도 LP로 제작한 적이 없던 음반들이다.
서씨는 "LP는 음원이 같더라도 다른 매체와 소리 차이가 있다"며 "음반 유통 권리를 갖고 있는 유니버설뮤직을 통해 LP 제작 허락을 받은 뒤 직접 커버를 만들고 판은 독일 공장에 주문해 6개월 만에 완성했다"고 말했다. 세 앨범의 가격은 2만~4만원대로 비교적 고가이지만 온ㆍ오프라인 음반매장 재즈 순위 상위권에 꾸준히 올라 있을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CD가 200장도 팔리지 않는 국내 재즈 음반 시장이지만 '비욘드 더 미주리 스카이' LP는 500장 대부분이 팔려나갔다. 서씨는 "1,000장 정도는 팔려야 손익분기점을 맞출 수 있어서 해외 판매도 준비 중"이라며 "12월 초 찰리 헤이든, 마이클 브레커, 허비 행콕 등 3종의 앨범을 추가로 LP 제작해 출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미국 음반시장에선 CD 판매량이 15% 가량 줄어든 반면 전체 매출 규모의 1.5%밖에 되지 않는, 합성수지 제품이라고 바이늘(Vinyl)로 통칭되는 LP 판매량이 16%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에도 이와 비슷한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최근까지도 국내의 LP 판매는 앨범을 해외에서 주문 제작해 오거나 해외 출시 LP를 수입해서 내놓는 정도였다. 하지만 패티김은 은퇴 기념 앨범 '파이널 커튼'을, 조동익은 '동경'을 최근 국내에 문을 연 LP 제작 공장에서 찍어냈다.
패티김의 LP는 팬들을 겨냥해 화보집과 CD 등을 포함한 10만원대 중반의 고가 패키지로 지난 7월 1,000장 한정 발매돼 현재 거의 매진 상태. 이 패키지를 제작한 론뮤직 관계자는 "가수 특성상 온ㆍ오프라인 매장보다 공연장에서 팬들이 구매하는 게 많았는데 예상보다 LP에 대한 관심이 높아 놀랐다"고 말했다. 지난달 출시된 그룹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나얼 솔로 1집은 앨범 수록곡 중 두 곡이 담긴 일명 도넛판(7인치 바이닐 레코드)을 포함한 3,000장의 한정판 패키지가 반나절 만에 매진됐다.
하지만 LP의 인기는 아직 일부 마니아에 한정된 것이 현실이다. 11월 12일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LP가 재발매되는 비틀스 앨범 전체 박스세트는 80만원 안팎의 높은 가격 때문에 100세트 미만만 수입됐다. 비틀스의 인기를 생각하면 너무 적은 양이다. 낱장으로 판매되는 LP도 국내 수입 물량이 앨범당 200장 정도다. 수입사인 워너뮤직코리아 조혜원 과장은 "1년 전 소매상을 대상으로 주문량을 종합한 결과 통상 개별 앨범당 LP 판매량이 200~300장 정도인 것으로 파악됐다"며 "눈에 띄는 변화는 아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증가 추세에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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