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 겨울, 아시아 식민지 야욕에 불타던 일본이 기습적인 진주만 공격을 감행했다. 태평양함대의 전진기지가 있던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 폭격 당한 미국은 본격적으로 전쟁에 참여하고 이때부터 미국과 일본간의 태평양전쟁이 시작됐다.
진주만 기습에 성공한 일본은 무서운 기세로 홍콩과 싱가포르 등 동남아 지역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미국령이었던 필리핀까지 일본에 점령당하자 미 극동군사령관이던 맥아더는 “나는 다시 돌아온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쫓기듯 전쟁터를 탈출해야 했다.
42년 양국의 사활을 건 미드웨이 해전에서 승리한 미국은 일본이 우위를 점하던 태평양의 전략적 판세를 단숨에 뒤집었다.
44년 10월 20일 다시 돌아온다던 맥아더 장군이 필리핀 레이테 만에 상륙했고이때부터 1주일 여 동안 2차 세계대전 중 최대규모 해전이라 일컬어지는 레이테 해전이 시작됐다.
개전 첫날 맥아더가 지휘한 제7함대와 니미츠 해군제독이 이끈 미 해군 3함대는 전투기를 동원한 막강한 화력으로 섬 주변을 불바다로 만들었고 패색이 짙어온 일본 제1항공함대 사령관 오니시 중장은 충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그것은 바로 세계 전쟁사에 유례가 없는 ‘가미카제 특공대’를 결성하는 것이었다.
폭탄을 실은 전투기를 몰고 조종사가 그대로 적함에 부딪히는 옥쇄작전을 펼치기로 한 것이다.
신의 바람이라는‘가미카제’는 1281년 가마쿠라 막부시절 몽골(원나라)이 일본을 침공했을 때 바람이 불어 이들을 침몰시켰다 해서 이름 붙여졌고 나라를 지키는 상징으로 불렸다.
전투가 최고조에 달했던 10월25일 오전 8시, 세키 유키오 일본군 중위 등 4명의 조종사가 각각 250kg의 폭탄을 적재한 채 미국 항모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폭음과 함께 전투기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함대에서는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국가의 목표를 위해 개인의 목숨 따위는 아랑곳 없었으며 일본군 조종사들은 오히려 천황을 위해 죽는 것을 명예롭게까지 생각하기도 했다.
가미카제 특공대는 몇 척의 군함과 전함을 격침시켰지만 주요 목표물인 항공모함을 침몰시키지 못했고 높지 않은 성공률과 화력의 열세로 레이테 해전은 결국 미국의 승리로 끝이 났다.
이듬해 전개된 오키나와 전투에서도 일본은 수많은 특공대원들이 옥쇄작전을 통한 가미카제 공격을 감행했지만 대부분 목표물에 접근하지 못한 채 흔적 없이 사라졌다. 무모한 공격으로 애꿎은 희생만 늘어난 것이다.
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되고 나서야 일본 천황은 15일 정오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다.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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