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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10월 23일] 언제 어떻게 죽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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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10월 23일] 언제 어떻게 죽더라도

입력
2012.10.22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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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느릿느릿 집으로 향하는데 그만큼 느릿느릿 내 뒤를 따라붙는 발소리가 있었다. 처음에는 아무런 경계 없이 내 걷는 발걸음 속 깊어지는 무게에나 관심을 뒀는데 이상하지, 뭔가 느낌이 묘했던 것이다.

아파트 정문으로부터 꺾어져 가장 안쪽이 내가 사는 동이니 한참을 더 가야 하는데 두려움 반 용기 반 결국 주머니 속 휴대폰을 꺼내서는 여보세요, 하며 걸려오지도 않은 상대에게 말을 건 채 슬슬 뒷걸음치던 나, 그렇게 공연히 놀이터로 향하고만 나, 시소 위에 걸터 앉아 뚜벅뚜벅 발소리의 주인을 쳐다보니 머리가 훌렁 벗겨진 어떤 아저씨였다.

멀리서도 달빛에 어찌나 그 민머리 윤기가 좔좔이던지, 그 또렷함은 며칠 뒤 아파트 현관에서 마주침과 동시에 효과를 발휘했다. 내 앞집 문을 열고 그 아저씨가 나오셨던 것이다. 이사 오면 인사라도 올까 기다렸어요. 사람이 마주하고 산다는 게 어찌 보면 핏줄보다 더한 인연일 수 있거든요.

쭈뼛쭈뼛 인사를 하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그 말 참 맞다 싶었다. 전세 계약 2년이니 730일, 부모 살아 생전에 그만큼 만나러 갈 수나 있으려나. 투신 자살하던 여자가 쓰레기 버리러 나가던 남자 위에 떨어져 두 사람이 숨졌다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기사에 헛웃음을 치다 세상엔 분명 인연이란 말이 존재하는구나 싶었다. 하필 두 사람 서른살 동갑내기라니, 땅이 아니라 하늘 보고 걷게 생긴 건 두 말 하면 잔소리고!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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