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태국 방콕. 제18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8) 유치국을 선정하는 회의를 앞두고 한국, 중국, 몽골 3국 정부의 기후변화협상 관계자들이 모였다. 한국은 COP18 유치전에 나선 상태. 우리 정부는 여기에 한 가지 주제를 더 얹어서 중국, 몽골 대표와 협상을 진행했다. 녹색기후기금(GCF) 설계위원회에도 참여할 테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총 40개국이 참여하는 설계위원회에서 개도국에 배정된 자리는 25개. 당시 몽골은 GCF 설계위원회 참여를 강력히 원하고 있어 몽골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었다.
우리 정부는 중국과 함께 몽골이 다른 위원회에 참여하도록 적극 설득했고, 결국 GCF 설계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COP18 유치전에 나선 상황에서 GCF 설계위원회 참여까지 탐을 내자 국내외에 부정적 여론이 가득했다"며 "하지만 당시 설계위원회 참여를 결정한 게 씨앗이 돼 사무국 유치라는 성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GCF 설계위원회 회의에서 기금 운용 및 집행에 관한 큰 테두리가 정해지는 것을 모두 지켜본 우리 정부는 좀 더 큰 야망을 품었다. GCF 사무국 유치에 나서기로 한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WB)에 못지 않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기금을 운용할 수 있는 대형 국제기구를 유치할 경우 세계적인 위상이 높아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국무회의 등을 거쳐 지난해 말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제1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7)에서 처음으로 기금 유치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주요 국제기구를 다수 유치한 경험이 있는 독일, 스위스 등 유럽 강국은 물론 멕시코까지 유치전에 뛰어들면서 "한국 유치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이런 불리한 조건에서 뒤집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치밀한 전략 덕분이었다. 우리 정부는 '아시아에 제대로 된 국제기구가 하나도 없다'며 유럽과 북미에 집중된 국제기구의 지역 불균형을 강조했고,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서 우리의 '가교' 역할을 최대한 부각시켰다. 서울을 제치고 국내 유치 후보도시가 된 인천이 연간 임대료와 운용비 약 600만달러를 지원키로 결정한 것도 큰 힘이 됐다.
행운도 따랐다. 당초 독일 본에서 열리는 3차 회의에서 유치국이 선정될 것으로 예상됐으나, 이사국 선정이 지연돼 이사회가 연기되는 바람에 이번 서울에서 열린 2차 회의에서 유치국 선정 투표가 진행됐다. 공교롭게도 투표 시기에 서울에서 한ㆍ아프리카 장관급 경제협력회의(KOAFEC)가 열려 아프리카 국가들의 지지를 얻어낼 수 있었다.
투표가 진행된 20일 일부 이사국이 "유치 후보국인 한국에서 투표 절차를 밟는 게 정당하냐"며 문제 제기를 했지만, 이미 다수 이사국의 마음은 우리 쪽으로 기운 뒤였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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