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발생한 '수원 20대 여성 납치 살해 사건'의 범인 우웬춘에 대한 판결문을 끝까지 읽는 일은 매우 고통스러웠다. 피해자의 시신을 엽기적인 방법으로 훼손하기까지 한 끔찍한 범죄 행각이 분 단위로 세세히 묘사돼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시신을 훼손하던 중 태연히 담배를 태우고 휴대폰으로 음란물까지 봤다는 대목에서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제3자인 기자도 이 정도인데, 하물며 피해자가 느꼈을 공포나 유족들의 고통과 분노가 얼마나 클지 감히 헤아릴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우웬춘에 대한 어떤 처벌도 이들의 상처를 아물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1심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던 그를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한 판사 개인에 대한 일부 네티즌들의 마녀사냥식 비난은 분명 도를 넘었다. 적나라한 욕설과 함께 판사의 증명사진과 이력이 인터넷에 나도는가 하면, 판사가 종교적 신념 때문에 사형을 선고하지 않았다는 유언비어도 나왔다. '우웬춘을 감형해 준 판사가 괴한의 습격을 받고 중태에 빠졌다'는 허위사실까지 무차별 유포되고 있다.
여론의 분노가 이처럼 확대되기까지는 '온정주의적 판결로 천인공노할 살인마에게 면죄부를 줬다'는 일부 언론의 여론몰이가 한몫을 했다. 이들은 마치 재판부가 우씨를 동정한 것처럼 보도하기도 했다. 여론을 의식한 정치권도 판사 개인에 대한 공격에 가세했다. 지난주 국회 법사위의 서울고법 국정감사에서 몇몇 의원들은 "판사 가족이 피해자였으면 이런 판결을 할 수 있었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번 판결이 온정주의나 판사 개인의 성향 때문이었다고 단언하는 것은 엄연한 왜곡이다. 동종 전과 없이 1명의 피해자를 살해한 피고인에게 사형 확정 판결이 내려진 사례는 1995년 이후 전무하다. 1심 재판부가 이런 판례를 뒤집고 우웬춘에게 사형을 선고한 이유는 '인육 제공의 의도가 있었다'는 판단 때문이었지만, 이후 인육 제공 의혹은 근거가 희박한 것으로 판명됐다. 이런 상황에서 항소심 재판부로서는 1심 형량을 그대로 유지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다른 비판이라면 몰라도, 온정주의라고 비난하는 것은 부당한 이유다.
우웬춘의 반인륜적 범죄는 상식을 가진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참기 어렵다. 하지만 그 분노의 화살을 근거도 없이 판사에게 돌리는 것은 다른 문제다.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이성택 사회부 기자 highno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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