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는 지난 7일 미사일 지침을 11년 만에 개정했다고 발표했다. 군 당국은 "북한 전역을 우리 탄도미사일 사정권 내에 넣을 수 있게 됐다"고 자찬했다. 하루 전날 서부전선에서 북한군 병사가 상관을 사살하고 귀순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것은 이런 들뜬 분위기에서였다. 그러나 상황은 곧바로 반전됐다. 지난 2일 동부전선을 넘어온 북한군 귀순병이 또 있다는 사실이 8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합동참모본부를 통해 공개되면서다.
이날 국감에서는 이 병사가 우리 병영의 생활관 문을 두드려 귀순 의사를 밝혔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정승조 합참의장은 "CCTV로 귀순자를 발견했다"며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답변을 정정하기 위해 사흘 뒤 국감장에 다시 불려가야 했다. 첫 보고가 거짓말이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합참은 북한군 병사의 귀순 다음날 야전군에서 '노크 귀순'이라는 정정 보고를 받았다고 실토했다. 상황실 장교가 이를 묵살하는 바람에 합참의장까지 보고가 올라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계는 물론 보고에서도 허점을 드러낸 군에 국민은 실망했다. 하지만 국민이 더 배신감을 느낀 것은 합참의장이 진작 노크 귀순을 알고서도 시치미를 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경계작전 실패는 군 최고지휘관으로서 숨기고 싶은 치부다. 그가 당초 귀순자 신변 보호를 핑계로 사건 자체를 공개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도 짐작할 만하다. 하지만 이후 그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정보를 버리고 유리한 것을 취했다가 뒤늦게 번복하는 일을 거듭했다. 국회 위증의 개연성을 알고서도 허물을 덮고 싶다는 욕망이 그를 미필적 고의 상태로 몰아갔을 수 있다.
노크 귀순 사건이 남긴 건 무엇보다 군에 대한 불신이다. 군을 믿을 수 없으니 "귀순병은 철책을 넘은 것이 아니라 자르고 들어왔다"는 괴담까지 나돌고 있다. 북한군 귀순 당시 CCTV 화면이 지워졌다는 것도 우연으로 보기엔 미심쩍다는 의심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번 사건은 우리 군에 국민의 안전보다 자기 보신에만 급급하다는 따가운 비판을 어떻게 극복하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숙제를 던지고 있다.
권경성 사회부 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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