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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10월 22일] 유권자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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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10월 22일] 유권자의 책임

입력
2012.10.21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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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 이후 실패한 미국 대통령을 꼽을 때 흔히 거론되는 지도자 중 한 명이 지미 카터다. 인권과 도덕을 앞세워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중동 평화를 위한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성사시키는 등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지만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이란 대학생들이 테헤란 주재 미국대사관을 점거하면서 무능한 대통령으로 낙인이 찍혔다. 이상주의적 인권을 꿈꾼 그는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물렀다는 조롱을 받으며 재선에도 실패했다. 그렇게 물러난 카터는 그러나 이후 그 어떤 퇴임 대통령보다 왕성하게 활동했다. 제3세계의 질병과 빈곤을 퇴치하려 했고 분쟁 중재에 적극적이었으며 사랑의 집짓기 운동에도 열심이었다. 1994년 북핵 위기가 일어났을 때는 직접 북한에 들어가 군사 충돌을 막고 협상을 끌어냈다. 일부 보수 세력은 그가 상황을 더 꼬이게 한다며 못마땅해 했지만 어쨌든 카터는 갈등을 푸는데 나름의 역할을 했고 그것을 인정받아 2002년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카터가 퇴임 후 활동으로 대통령 시절의 무능 이미지를 어느 정도 벗었다면, 조지 W. 부시는 아직도 실패한 지도자, 최악의 지도자라는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밋 롬니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얼마 전 열린 전당대회에 혹시라도 부시가 올까 봐 전전긍긍했고 그가 불참을 통보하자 쾌재를 불렀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다. 퇴임 후 부시는 타인의 눈에 띄는 것을 꺼리고 그래서 광장공포증(사람들이 모인 곳에 나갈 때 공포를 느끼는 증상)에 빠져들고 있다는 증언도 나온다. 그가 그림 그리기로 소일한다는 소식은 그런 점에서 더욱 쓸쓸하게 들린다.

부시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재임 시절 미국과 세계를 갈등과 대결로 몰고 갔고 그 사실을 아직 많은 사람이 기억하기 때문이다. 특히 대량살상무기를 제거하겠다며 시작한 이라크 전쟁은,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고도 그 무기를 찾아내지 못해 명분 없는 전쟁, 가장 쓸모 없는 전쟁이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는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았고 무슬림을 반미 전사로 키웠으며 반미 정서를 확산시켰다. 미국인을 편가름 했고 이유 없는 전쟁에 동맹국들을 끌어들였다. 신자유주의 정책에 천문학적인 군비 지출이 더해지면서 미국의 경제와 재정 상태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퇴임 4년이 됐지만 카터와 달리 재기의 기회를 잡지 못한 채 아직도 비난을 받고 있는 부시를 보면서 과연 그를 고른 미국 유권자들은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진다. 이미 1차 집권 당시 그의 패권주의와 대결주의가 논란을 일으켰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국민은 부시를 또 한번 대통령으로 만들어 그에게 도합 8년의 세월을 맡겼다. 물론 유권자가 특정인을 지도자로 선택할 때 그가 훗날 어떤 평가를 받을지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이유가 어떻든 최악의 지도자로 기록될 정치인을 뽑았다면 그 유권자들 역시 자신의 선택이 자랑스러울 수도, 떳떳할 수도 없을 것이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대통령 선거전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다. 2주 앞으로 다가온 미국 대선은 민주당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압승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접전이 펼쳐지고 있다.

60일이 채 남지 않은 한국 대선도 후보들이 치열하게 각축하고 있다. 유권자들은 혹시라도 훗날 최악의 대통령으로 기록될 후보를 고르는 어리석음을 피해야 한다. 내가 선택한 대통령이 나중에 어떤 평가를 받든 알 바 아니라고 한다면 무책임한 태도다. 지역감정이나 의미 없는 인연, 근거 없는 기대감 등 전근대적 관념에 현혹되지 않는 냉정한 유권자가 돼야 한다.

박광희 국제부장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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