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 카드를 만지작거리던 대선 주자들이 약속이나 한 듯 주머니 속에 집어 넣기 바쁘다. 자신들이 앞다퉈 내세운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증세가 불가피한 사실을 알면서도 유권자(납세자)의 분노를 의식해 애드벌룬만 띄우다 한 발 빼는 형국이다. 전문가들은 "표심을 얻으려고 복지 확대엔 앞다투다 정작 이를 뒷받침할 재원 문제에 침묵하는 건 비겁한 행위"라고 지적한다.
안철수 무소속 후보는 19일 증세 문제에 대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세정 투명성과 조세 정의"라며 "우선 여러 세제 혜택이 현실에 맞는지를 보고 나서 세율 올리는 것은 국민 동의 하에 진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안 후보 측은 이날 4단계 증세 원칙을 제시하면서 '추가 세수 필요 시 철저한 국민적 합의와 사전 동의 하에 증세 고려'란 항목은 맨 마지막에 뒀다. ▦SOC(사회간접자본) 사업 축소 등 지출 구조 개편 ▦정부 예산 자연 증가분 우선 활용 ▦비과세 감면 축소 등으로 이어지는 3단계 방법으로도 세수가 부족하면 증세를 '고려해보겠다'는 것이다. 이는 안 후보가 저서 에서 밝힌 '보편적 복지를 위한 보편적 증세 입장'을 사실상 철회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측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16일 "조세부담률이 21% 수준까지 간 적이 있었기 때문에 그 정도까지 갈 수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라고 해 증세 필요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하루 만인 17일 "증세를 하려면 세율을 올려야 가능한데 (세율을 높이는 것은) 현재로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진화에 나섰다. 김무성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은 '부유세' 신설을 주장했다가 하루 만에 "개인적 의견"이라며 물러섰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측은 '부자 증세'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한편에선 이 같은 기조가 전면적인 증세 방침으로 비치는 것은 경계하고 있다. 문 후보 측은 일단 증세를 위한 구체적인 수치 인상폭을 제시하기 보다는 실효세율을 높이는 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현행 22%인 법인세 최고세율을 참여정부 당시처럼 25%까지 인상키로 방침을 정했지만, 이보다는 11% 수준에 불과한 대기업들의 실효세율을 현실화하는 방안을 강조하는 식이다.
각 후보들이 증세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기를 주저하는 것은 괜히 총대를 맸다가 여론의 역풍을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허윤 서강대 교수는 "세금 문제는 정치철학의 문제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 유권자의 평가를 받아야지 득표의 극대화 전략에만 매달려서는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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