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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View] 나토 보급로서 목숨 건 교통정리 '아프간의 콜라병 소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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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View] 나토 보급로서 목숨 건 교통정리 '아프간의 콜라병 소년들'

입력
2012.10.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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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은 바위 절벽, 다른 한쪽은 낭떠러지인 산길을 대형 트럭들이 줄지어 올라간다. 파키스탄 국경에서 온 이들 트럭에 실린 집채만한 컨테이너가 방수포에 덮인 채 연신 흔들거린다. 거대한 차량들의 틈바구니를 헤집으며 승용차 밴 소형트럭이 달린다. 트럭들은 짐칸에 가구나 소 당나귀 같은 가축, 때로는 부르카(무슬림 여성 전신복) 차림의 여자들을 싣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동쪽, 차들이 밀물처럼 오가는 8㎞ 길이의 잘랄라바드 산악도로에는 길 한복판에 서서 악을 쓰고 휘파람을 날리는 이들이 곳곳에 있다. 납작하게 찌그러뜨린 플라스틱 음료수 병을 흔들며 혼잡한 도로에 길을 트고 차량의 진로를 안내하는, 자칭 교통경찰인 이들을 사람들은 '콜라병 소년'이라고 부른다. 카불로 통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군대의 주요 보급로이자 아프간에서 가장 위험한 이 도로가 이들에게는 궁핍한 생계를 꾸리는 소중한 일터다. 운전기사들이 건네는 푼돈의 수고비가 이들의 수입이다.

꾀죄죄한 얼굴에 빨간 야구모자를 쓴 열두 살 소년 사미울라는 현장을 찾은 뉴욕타임스(NYT) 기자에게 "좋아하진 않지만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도로 안에서도 가장 위험하다는 내리막 급커브 지점에서 교통안내를 한다. 차들이 두 대씩 어깨를 바싹 붙이고 내달리는 이 길에서 협곡 아래 처박힌 녹슨 트럭 세 대가 내려다보인다. 사미울라는 "우리가 없다면 매일 사고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콜라병 소년들은 2001년 미국의 침공으로 시작된 아프간 전쟁의 산물이다.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는 전쟁은 이 나라 사람들의 경제적 여건을 바꿔놨다. 소년들과 그 가족을 먹이는 화물차들은 NATO군과 계약을 맺고 아프간과 파키스탄을 오가며 군수품을 나르는 도급업자 차량이다. 지난해 11월 파키스탄이 미국의 무인기(드론) 공습에 항의해 국경을 폐쇄하자 콜라병 소년들의 일자리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7월 파키스탄 국경이 다시 개방될 때까지 8개월 가량 이어진 실업사태는 이들에게 2014년 미군 철수 이후 닥쳐올 엄혹한 현실의 예고편이다.

추레한 외투를 입고 매연 속에서 일하는 키아울라는 "그때는 할 일이 거의 없었다"고 회상했다. "우리에게 돈이 되는 것은 트럭이지 승용차가 아니거든요. 트럭 운전기사들은 보통 10~20루피(파키스탄 화폐ㆍ미화 10~20센트)를 줘요. 그런데 당시 내 하루 수입은 100~150아프가니(아프간 화폐ㆍ미화 2~3달러)밖에 안됐어요. 빵과 설탕을 사기에도 빠듯했어요." 키아울라는 가족 중 돈을 버는 유일한 사람이다. 그의 수입으로 다섯 형제가 학교에 다닌다.

콜라병 소년이 모두 미성년자인 것은 아니다. 바위산처럼 울퉁불퉁한 얼굴의 70세 노인 무함메둘라도 그 중 하나다. 탈레반 집권기에 광산 폭발로 다리를 잃은 그는 금요일을 빼고는 매일 곡선로에 있는 터널에 나온다. 그는 두 달 전 가족이 입원하는 통에 열흘 간 도로에 못나왔다가 다른 이에게 일터를 뺏길 뻔했다고 한다. "여기는 세계의 끝"이라고 진저리치면서도 그는 "행운이 하늘을 나는 날도 있다"고 말했다. "가끔 착한 사업가나 주지사, 고위 장교가 탄 차들을 안내할 때가 있어요. 수고비를 두둑이 챙기는 그런 날은 집에 전화해서 고깃국을 끓이라고 합니다."

이훈성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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