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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추하고 허름해도 사람내음 따뜻한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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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추하고 허름해도 사람내음 따뜻한 곳"

입력
2012.10.19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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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세기 현대사의 한 장면을 고스란히 간직한 '백사마을'은 역사 문화적 가치가 매우 높습니다."

정확한 표현은 '중계동 104마을'이지만 흔히 '백사마을'로 불리는 곳이 있다. 1960년대 말 서울 청계천 영등포 등 도심에 거주하다 재개발로 쫓겨난 사람들이 노원구 중계동 104, 불암산 자락에 자리를 잡으면서 생긴 철거민 촌이다. 재개발 계획이 잡히면서 개보수 작업이 전면 보류돼 있고, 주민들이 하나 둘 씩 떠난 뒤 방치된 빈집들이 푹푹 주저앉고 있는 전형적인 달동네다.

휑해진 이 마을의 시장과 이발소, 목공소에서 20일부터 이달말까지 흔치않은 그림 전시회가 열린다. 전시회 이름은 '중계동 104. 사람들 2'로 붙여졌다. 이 마을 보존에 힘쓰고 있는 서양화가 이성국(50)씨가 2003년부터 관찰해오던 백사마을의 풍경을 담은 49점이 전시된다. 지난해의 전시회 '중계동 104. 사람들 1'이 골목 등 마을의 풍경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번 주제는 사람이다.

"49점 중 30점이 초상화입니다. 초기부터 정착해 마을을 개척한 원주민들이 주인공이죠."

이씨는 "작가가 주인이 되는 여느 전시회와 달리 마을의 주민들이 중심이 되고, 초상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자신을 소개하고 설명하면서 소통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사실 초상화는 사진이 없던 시절엔 권력자들의 전유물로 통했다. 절대적이고 권위적인 의미가 있었던 탓이다. 달동네 주민들의 초상화가 전시의 핵심이 된 까닭이 궁금했다. "마을 사람들은 개발과 재개발이 반복되는 서울에서 또 다른 공간을 개척하고 나름의 생활 문화를 일궜어요. 한국전 참전용사부터 산업화와 민주화의 현장을 두루 지킨 분 등 모두 초상화의 주인공이 되고도 남습니다."이씨는 초상화라는 프레임을 이용해 백사마을 사람들의 노고를 재조명한 셈이다. 유난히 대문과 번지수를 배경으로 인물을 세운 그림이 많은 것도 이런 효과를 극대화 하기 위한 것이다.

그가 10년 가까이 마을 사람들과 교유하면서 글과 사진, 그림으로 백사마을을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다양성과 옛 것이 사라지는 데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이씨는 "재개발을 통해 서울은 획일화 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며 "누추하고 허름하다고 해서 청산해야 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그의 바람이 통했는지 최근 서울시는 이 마을 300여 가구를 매입한 뒤 보수해 임대주택으로 운용하기 시작했다. 마을의 일부를 주거지보전구역으로 전환한 것으로, 전면적인 개발은 지양하겠다는 메시지로 읽혀진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 본 그는 "씁쓸하다"고 했다. "전면적인 재개발을 하면 임대주택이 급증하고, 그러면 지역 이미지가 나빠질 것을 우려한 주민들과 지방자치단체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일 뿐입니다."

오랜 시간과 적지 않은 비용을 들여 여는 전시회지만 이씨의 소망은 단 하나다. "이번 전시로 획일화된 우리의 사고와 그에 따른 선입견이 좀 줄었으면 좋겠어요. 무질서하고 추하고 비천하다는 생각을 잠시 접고 들여다 보면 얼마나 따뜻한 곳인데요. 빈집이 40%나 되지만 흉악범은 물론이고 그 흔한 도둑도 찾기 어려운 곳이 백사마을입니다. 이쯤되면 전시 공간으로도 손색이 없잖아요?"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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