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정상들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 내 은행을 감독하는 단일 감독기구를 창설하기로 합의했다. 이로써 EU는 은행의 위기가 EU 전체의 위기로 번지는 것을 방지할 안전판을 마련하게 됐다. 나아가 은행동맹(banking union)을 결성하기 위한 중요한 발판이 마련됐다.
헤르만 반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18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정상회의 직후 "27개국 정상들이 감독기구 창설에 필요한 법적 체계를 올해 안에 수용하기로 합의했다"며 "내년 안에 감독기구가 활동을 개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합의안에 따르면 감독 권한은 유럽중앙은행(ECB)이 갖는다. 감독 대상은행은 유로존 17개국의 6,000개 은행이 될 전망이다. 감독기구는 ECB의 본래 업무인 통화정책 기능과는 엄격히 구분하기로 했다.
프랑스와 ECB는 그 동안 단일 감독기구 창설을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독일은 "대형은행만 감독대상이 돼야 한다"며 단일 감독기구보다 회원국 재정규율 강화가 더 시급하다는 입장이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정상회의에 앞서 사전 조율을 했는데, 결과만 놓고 보면 프랑스 쪽의 입장이 상당히 반영된 셈이다.
정상회의가 합의한 대로 단일 감독기구가 창설되면, ECB나 유로안정화기구(ESM)는 회원국 정부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개별은행 문제에 개입할 수 있다. 조제 마누엘 바호주 EU 집행위원장은 "ECB는 필요하다면 유로존 어느 은행에도 개입할 수 있게 될 것"이라 말했다. 이렇게 되면 유럽 일부 은행의 위기가 국가의 위기, 나아가 EU 전체의 위기로 확산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전망이다.
단일 감독기구 창설은 유럽 전체 은행을 하나의 체계로 통합하는 은행동맹을 실현하는 교두보의 역할을 할 것으로도 평가된다. EU는 이후 공동 예금자보호 제도를 도입하고 부실은행 단일청산 체제를 갖추는 식으로 은행동맹의 기반을 다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단일 감독기구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비유로존 국가인 영국이 은행에 대한 감독ㆍ통제권을 분산하는데 반대한다. 독일도 ECB가 자국 주립은행(란데스방크)에 개입하는 것에 거부감이 크다.
정상회의에서는 최근 유럽 재정위기의 핵심 국가로 떠오른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 문제는 논의되지 않았다. 마리아노 라호이 스페인 총리가 아직 구제금융을 신청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이영창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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