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요?"
아이고, 맙소사! 어머니, 거울 앞에 서서 누구한테 말을 거시는 거예요, 어머니잖아요, 어머니. 윤양심 여사님요. "나냐?"
눈 동그랗게 뜨고 거울 속 모습에 말 거시다가, 다시 배시시 웃는 저 분이 바로 우리 시어머니랍니다. 올해 여든 둘 되셨죠. 그런데 어머니의 시계는 40년 전, 그때만 해도 청춘이었던 마흔 살에 머물러있어요.
하긴, 어머니가 봐도 지금의 당신 모습이 영 낯설 만하죠. 10년 전 시아버지 돌아가셨을 때도 '고향 떠날 수 없다'며 전남 강진 시골에서 혼자 농사일 하시며 세 끼 꼬박꼬박 지어 드시던 강단 있고 정갈한 분이었으니까요.
5년 전 막내 서방님이 "어머니가 베란다에 실례를 하셨다"는 말을 할 때까지만 해도 '너무 급해서 실수하셨나 보다' 생각하고 말았죠. 그런데 웬 걸요, 실수가 너무 잦아져서 대학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우리 어머니가 치매라니.
큰 아들인 우리 바깥양반을 포함해 아들 다섯, 딸 셋이 머리를 맞댔어요. 2년은 어머니와 가까이 사는 자식들이 오가며 돌봤지만, 아무리 약을 먹어도 증상이 악화하는 걸 인력으로 어찌 막나요.
결국 서울에 사는 작은 시누가 하던 일까지 관두고 어머니 댁으로 내려가지 않았겠어요? 나머지 형제는 다달이 모아 150만원씩 만들어 부양에 보탰죠. 그렇게 한 1년 지났나. 작은 시누가 두 손 들었어요. 자기 집이 그립기도 했겠지요.
"성님~, 성님은 몇 남매 뒀어?" 어머나, 우리 어머니 좀 보세요. 어머니, 저잖아요. 어머니 며느리 강연임이요. 본인이 마흔인 줄 아시니 올해 예순인 저도 어머니에겐 '형님'인 거죠.
가만,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그래요. 다음엔 큰 시누가 나섰는데 나중에 우울증까지 걸려 나가떨어졌죠. "너는 시집 간 애가 왜 여기 와 있냐?" "내 집에서 밥 축내지 말고 어서 가라!" 어머니가 그렇게 구박을 하셨다네요. 자기 어머니가 전혀 딴 사람이 된 것도 속상한데 독한 말까지 내뱉으니 시누 속이 얼마나 새까맣게 탔겠어요. 견디다 못한 큰 시누가 2년 만에 짐 싸 들고 쫓기듯 자기 집으로 가버렸어요.
그래서 제가 여기 경기도 이천 우리 집에 어머니를 모시고 온 거죠. 그게 석 달 전 일이네요. 사실 이름만 맏며느리였지, 35년 전 결혼한 이래 모신 적도 없는데 이제라도 효도할 기회가 생긴 거구나 싶었어요. 아버님 돌아가신 이후로 계속 혼자 사셨으니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그래서 몹쓸 병에 걸리신 건 아닐까 죄책감도 들었어요.
하긴, 가족이되 피는 안 섞인 내가 어머니를 돌보는 게 차라리 나으려니 싶기도 해요. 경찰하다 퇴직한 남편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단단한 양반인데 장남조차 못 알아보는 자기 어머니 모습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더라구요.
어쨌든 어머니가 오신 이후로 소일거리로나마 했던 가게도 때려 치웠어요. 어머니는 저 없으면 안되거든요. 이제는 잘 때도 옆에 계셔야 속이 편해요. 그렇게 붙박이로 옆에 있는데도 석 달 새 세 번이나 잃어버려서 가족들이 혼비백산했어요. 한번은 어떻게 가셨는지 영동고속도로 한복판에서 경찰이 찾은 적도 있다니까요.
돈 문제요? 정부가 노인 치매나 중풍환자들은 장기요양등급을 매겨주잖아요. 2급까지는 요양원에 맡길 수 있지만, 우리 어머니는 3급이라 집에서 모시고 있어요. 어머니 앞으로 매달 87만8,900원이 요양비로 나오고, 생활비는 남편 연금으로 해결하니까 경제적으로 그다지 어려움은 없어요.
돈 문제보다 힘든 건 마음이죠, 마음. 내가 잠시 눈만 돌리면 일이 생기니 '이러고 어떻게 사나' 막막할 때가 많아요. 남 불러다 우리 시어머니 돌보라 하기엔 내키지 않구요.
평일에는 교회에서 하는 주간요양보호센터에 오후 5시30분까지 어머니를 맡길 수 있어요. 그럼 그때 집안 일도 하고 머리 염색해주는 아르바이트도 하죠. 이것마저 안 하면 내가 못 견딜 거 같아서, 이렇게 스트레스라도 풀려고 하는 거랍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어머니를 모실 수 있겠느냐고요? 하하. 그걸 제가 어찌 알겠어요. 평생 하라면, 저도 인간인지라 장담할 수 없네요.
어라, 우리 어머니 어디 가셨나? 어머니이~! 5분을 못 버텨요. 어머니 큰 일은 여기, 변기에 보셔야죠, 이건 쓰레기통이잖아요. 잠깐만요, 저 어머니 씻기고 속옷 갈아 입혀드리고 올게요.
김지은기자 luna@hk.co.kr
이서희기자 sherlo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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