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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10월 20일] 닥치고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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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10월 20일] 닥치고 살아

입력
2012.10.19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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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광도 아니면서 가방만 보면 짐 싸고파 죽고 싶어지는 요즘이다. 의 창업자 토니 휠러가 말했다지. 그동안 다녀온 여행지 중에서 가장 좋았던 곳이 어디냐는 물음에 공항의 출국장이요, 라고. 여행의 제1 계명이 왜 떠나는지를 생각하고 떠나라는 얘기일진대 그 지령 아닌 팁 앞에서 왜 나는 맥없이 또 다리가 풀리는지.

여행을 핑계로 나는 눈앞에서 해결해야 할 그 어떤 두통거리로부터 도망을 치려했던 건 아닌지. 요 며칠 내 하루살이를 백지에 적어 내려가기에 이르렀다. 약속이 넘쳤다. 나뭇가지 휘어지는 찰나 한번 엿볼 틈이 없었다. 전화는 빗발쳤다.

바쁜 척 인기 많은 척 지금 자랑하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이럴 답밖에. 나 좋아서 먼저 내민 손은 없었다고, 죄다 어떤 요구들의 일색일 뿐이라고, 냉정하기 이를 데 없는 한 선배의 충고는 그랬다. 싫으면 때려 치워, 너도 너 좋아서 하는 일이잖아, 정도껏 네가 조절해야지, 너에게도 문제가 있어.

여행이고 행여이고 읽지도 않을 두꺼운 책 한 권 들고 카페에 가 앉았는데 쪼글쪼글 할머니가 내게 와 껌 한 통을 내미셨다. 커피만 마시면 입 텁텁해, 하나 사. 그나저나 이 아까운 커피는 왜 남기고 그런담. 엉겁결에 천원짜리 한 장 내밀고 껌을 산 나에 반해 옆 테이블 커피잔을 홀랑 비워버린 할머니. 자리 주인이 화장실 간 걸 알랑가 모를랑가 상관없이 유유히 자리를 뜬 할머니. 아 산다는 건 이리 짠 거냐고!

김민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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