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을 선포한 1972년 박정희의 10ㆍ17 대통령 특별선언은 유신에 대해 전쟁을 막고 민족 통일과 중흥을 위해 ‘부득이한 비상조치’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역사학계는 동의하지 않는다. 유신은 철저히 박정희 1인 독재를 위한 체제이며 헌정을 파괴하고 인권을 유린한 악몽이라는 것이 공통된 평가다. 박근혜 후보조차 “5ㆍ16,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은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고 지난달 말했다. 그의 역사관을 비판하는 여론에 밀린 발언이긴 하지만, 박정희 재평가를 주장하는 수구파라도 유신이 정당했다고 대놓고 옹호하기는 어려워졌다.
유신 선포 40년이 흐른 지금, 진보학계는 ‘유신체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경고한다. 학술단체협의회가 19일 여는 연합 심포지엄 ‘2012년 오늘, 유신을 말한다’에서 기조 발제를 맡은 유초하 충북대 교수는 “오늘날 이명박 정권을 보면 과거 독재정권의 행태들이 떠오른다”며 “유신이 40년 전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지금까지 살아 숨쉬고 있으며 되레 확장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우리 사회를 배회하는 유신의 잔재를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거 중 하나는 박정희에 대한 향수다. 올해 들어 박정희도서관에 이어 박정희대학원도 생겼다. 한길석 한국철학사상사연구회 회원은 이 같은 박정희 신드롬이 빈곤을 두려워하는 한국인의 내면에 각인된 태도라고 분석한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겠다는 집착이 성장지상주의를 내건 박정희 지지를 낳았고,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과 신자유주의 파고를 거치면서 박정희식 경제 모델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의 탄생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지난 8월 민족문제연구소 등 4개 학술단체가 공동 주최한 학술대회 ‘역사가, 유신시대를 평하다’는 유신체제가 다방면에 끼친 영향을 살펴 유신 옹호론의 허구성을 지적했다.이 자리에서 학자들은 재벌ㆍ토건국가ㆍ투기의 뿌리로 유신체제를 지목하고, 1997년 외환위기는 그 해악의 정점이라고 진단했다. 4대강 사업으로 대표되는 현 정권의 토건주의도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고 지적했다. 오미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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