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자치단체에 대한 국정감사는 자칫하면 '통과의례'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통상적인 행정행위를 놓고 뻔한 질의 답변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같은 정당 소속 단체장을 띄워주는 등 덕담도 풍성하다. 그래서 수감하는 공무원도 대부분 국감이 끝나면 나른한 표정을 나누는 게 고작이다. 대전광역시에 대한 역대 국감도 태반이 그랬다.
18일 행정안전위가 찾은 대전시 국감현장 역시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예견됐다. 직전 대전시장이 국감위원으로 참석하는'얄궂은 인연'정도가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올랐을 뿐이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염홍철 시장을 향한 덕담은 가뭄에 콩나듯 했다. 감사위원들은 여야 가리지않고 저마다 '훈계와 질책'을 거푸 쏟아냈다.
짐짓 통과의례를 기대했을지 모를 염 시장을 몰아세웠다. "진정성을 가져라"(고희선 의원) "이런식으로 행정을 하나. 각성하세요"(이상규 의원) 염 시장의 책임행정을 요구하는 질책이 반복됐다. 유승우 의원은 염 시장의 교만을 빗댄 효경 경구까지 소개했다. 의원 태반이 질의한 롯데복합테마파크 조성 논란 국면에서는 일순간 초긴장 모드까지 번졌다. 이 의원이 대전시의 꿈돌이랜드 매입 관련, 논쟁으로 얼룩진 이사회 회의록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그는 "롯데를 위한 특혜가 아니냐"고 따지며'개그콘서트 행정'이라고 꼬집었다. 심지어 배임죄도 거론했다. 대전시 양승찬 국장이 증인으로 나서 일문일답을 하는 이례적인 광경까지 빚어졌다.
직전 대전시장을 지낸 박성효 의원은 한 발 더 나갔다. 롯데복합테마파크 조성 사업 자체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그는 서민경제 피해 등 숱한 과제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재검토해야할 사안이 분명하다면 성급하게 하지않는게 바람직하다고 제안했다. 급기야 염 시장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는 사업을 취소할 생각이 없다며 맞서기도 했다. 문희상 의원은 재벌이 개입하는 현안은 투명성 확보가 중요하다며 시민과의 소통을 강조했다. 독불장군식으로 행정을 펴면 성공할 수 없다고 충고했다. 염 시장은 어깨를 흔드는 특유의 몸짓으로 "보완하겠다"며 한 발 물러섰다.
대선을 염두에 둔 공방은 한 줌도 없었다. 염 시장의 선진당 탈당 여부 등 정치적인 논쟁도 침묵했다. 대신 세 번째 대전시장을 맡은 '염홍철 행정'을 바로잡으려는 여야 의원들의 질타와 충고는 한결같았다. 박 의원은 눈 앞의 성과에 앞서 사회적 가치를 염두에 두는 행정을 하라고도 주문했다. 염 시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국감이 일회성 통과의례가 아닌 올바른 자치정신을 회복하는 디딤돌로 승화하는 전기가 될 수 있을까.
최정복기자 cj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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