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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가르치는 교과서

입력
2012.10.17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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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공식문자로 채택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국내 국어 검정교과서 대부분에 언론 보도 그대로 잘못 실려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외교통상부, 문화체육관광부 등은 이 사실을 진작에 알고서도 교과서에 잘못된 내용이 실려 있는 것조차 전혀 몰랐던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8일 문화부는 '인도네시아 찌아찌아족 '한글섬'에서 세종학당 철수'라는 이날 일부 언론 기사에 대한 해명자료를 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찌아찌아족의 한글 채택을 공식 승인했다는 언론 보도를 바우바우 시장이 부인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로마자 이외의 자국 언어표기를 허용하지 않는 상황에서 한글 문자 보급은 국가간 외교 갈등 소지가 있어 문화부에서는 '세종학당'을 통해 외국어로서의 한국어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간단히 말해, 인도네시아 중앙 정부는 소수 민족의 한글 채택을 허용하지 않았으며, 문자 없던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공식문자로 채택한 것도 사실과 다르다는 말이다.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가 입증했다며 한국인의 문화적 자부심을 한껏 높여줬고 해외 언론의 비상한 주목까지 받았던 '한글 수출'이 사실이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찌아찌아족 한글 전파의 진실'에 대해 문화부 담당자는 17일 '한글 공식 문자 채택' 보도가 나온 2009년 8월 직후 외교부 공관을 통해 인도네시아 교육부의 언어정책 담당자에게 확인한 결과를 설명했다. "인도네시아 헌법에서 지방어 중 고유문자가 있는 자바어 등 일부 예외 말고는 모두 로마자로 적게 되어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찌아찌아족의 한글 사용을 공식으로 불허한다."

국내 언론에 단골로 소개됐던 로마자와 한글 병기 도로표지판에 대해서도 그는 "한 부족장의 아들이 거주하는 지역 일부에 몇 개 해본 것에 불과한데 과장 보도된 것"이라며 "중앙 정부는 도로표지판 등에 공식 문자로 한글 표기를 하지 말라고 바우바우시에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 담당자는 이런 이야기를 지난해부터 수 차례 해명자료로 언론에 설명했지만 아무도 귀 기울여 듣지 않았다고 했다.

이와 관련 2009년 훈민정음학회 총무이사로 찌아찌아족 한글 보급에 앞장 섰던 서울대 언어학과 이호영 교수 역시 "공식문자로 채택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며 "당시에도 언론의 과장 보도를 두고 학회에서 논란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이를 바로 잡지 못한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찌아찌아족이 부족문자로 한글을 받아들이기로 한 건 맞다"고 설명했다.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사실과 다른 '찌아찌아족 한글 공식문자 채택'이 언론이 과장 보도한 그대로 교과서에 버젓이 실려 있다는 점이다. "교과서에 잘못된 설명이 있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봤다"고 지적하자 뒤늦게 교과서 확인 작업에 나선 문화부는 대형서점에서 판매되고 있는 금성, 지학사 등의 대표적인 고등학교 국어(검인정) 교과서 5종 모두에 2010년부터 찌아찌아족 사연이 언론 보도 그대로 실렸다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문화부는 이날 교육과학기술부에 공문을 보내 '표기 문자의 하나로 새로이 한글을 배우고 쓰기 시작했다'는 내용으로 수정하고 다른 교과서도 비슷한 표현이 없는지 확인해 주도록 요청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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