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란 말이 있다. 프랑스 사람들이 지방질 많은 음식을 즐기는데도 심혈관계 질환은 유독 적은 것을 빗대어 일컫는 말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프랑스인들이 물처럼 마시는 적포도주에 항(抗)산화물질인 레스베라트롤(resveratrol) 성분이 많은 덕분이다. 레스베라트롤은 혈소판의 응집을 감소시키고 혈액을 흐르기 쉽게 하며 탄력 있는 혈관을 유지하게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비슷한 뜻을 지닌 비유로 아시안 패러독스(Asian Paradox)란 말이 있다. 2006년 미국 예일대 의대 연구팀이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인들이 즐겨 마시는 녹차(綠茶)의 효능을 분석한 논문에서 처음 썼다. 연구팀은 녹차의 효능에 관한 100여 개 연구결과를 종합, 두 나라의 흡연률이 미국보다 높은데도 심혈관계 질환과 폐암 발생률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녹차에 함유된 강력한 항산화물질 카데킨(cathechins) 덕분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 카데킨 성분은 소화기관의 콜레스테롤 흡수를 저해하고 지방질의 체내 침착을 억제한다. 이에 따라 혈압을 떨어뜨리고 심장을 강화하며 지방간이나 동맥경화를 예방한다. 또 감기 바이러스의 활동을 저지시키고 체내세포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을 막는다. 중국인들은 당(唐) 나라 때 이미 이런 효능을 알고 녹차를 즐겼고, 그 즈음 신라와 일본에도 전해졌다. 신라 27대 선덕여왕이 처음 녹차를 마셨다는 기록이 있다.
■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15일 '아시안 패러독스'를 논했다. '변환기의 동북아 정세'를 주제로 열린 국제포럼에서다. 녹차 얘기가 아니다. 중국과 동북아의 부상(浮上)과 함께 역사와 영토 갈등, 군비 경쟁, 핵 위협 등으로 큰 진통을 겪는 역설(逆說)을 그리 규정했다. 그는 동북아 발전을 위해서는 아시안 패러독스를 대화해(大和解)와 한중일 협력으로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뜻은 좋은데, 녹차의 효능에 관한 비유와 헷갈리는 모호한 용어 선택은 좀 아쉽다.
강병태 논설고문 bt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