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듬해 봄에 나는 남편의 이장을 결심하고 안 서방과 장쇠와 더불어 먼 길 떠날 준비를 단단히 하고는 세마를 내어 단양을 향하여 출발했다. 단양 가서는 세마를 맡겨두고 돛배를 세내어 영월까지 물길로 올랐다. 충주 가서 서울 마포강에서 오는 소금을 받아 싣고 내륙으로 올라가는 소금배였다. 화물은 없고 우리들 세 사람에 사공이 네 사람이었으니 배는 가뿐하게 미끄러져 갔다. 물 깊은 데서는 바람을 받고 잘도 거슬러 올랐지만 얕은 곳에 이르면 세 사람은 내려서 긴 줄에 뱃머리를 매어 끌었다. 도사공은 삿대로 배가 기슭으로 가지 않도록 버팅기며 천천히 올라갔다. 다시 깊고 너른 데로 나오면 배는 다시 잘도 올라갔다. 정선 애오라지 동강과 평창강에서 내려온 산판의 통나무 뗏목들이 영월 덕포에서 모여 남한강으로 흘러내려 오는데 끝도 없이 긴 꼬리를 끌고 흘러 지나가곤 하였다.
덕포 물가의 둔덕에는 산자락을 등지고 서너 채의 집들이 띄엄띄엄 들어앉았는데 오가는 뱃길의 사공들이며 장사치들을 상대로 하는 주막이나 밥집이었다. 이신통이 빌려 살았다던 뗏사공의 집도 역시 주막을 겸하고 있었다. 방 세 칸 있는 너와지붕의 옴팡집인데 울타리도 없이 그냥 마당에 서면 강변이 내다보였다. 한 번 다녀갔던 장쇠가 앞장서서 우리를 안내하여 그 집으로 올라가니 마침 사공이 집에 있었다. 그는 장쇠를 알아보았고 우리를 방으로 들였다. 머리와 수염이 회색빛으로 센 늙은 사공이 말했다.
이 서방은 참 말수도 적고 점잖은 분이었소. 우리네야 그이가 활빈당 유사인지 뭔지 한다는 소린 들었지만 무슨 상관이 있겠나요. 사람들이 이 서방을 찾아 배를 타고 오기도 하고 말을 타고 오기도 했소. 나하구 가끔씩 술도 먹었다오. 어찌 여염 살림을 할 생각이 없는가 물으면, 자기는 덤으로 사는 죄 많은 인생이라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구 알쏭달쏭한 소릴 합디다마는.
하룻밤 자고 나서 우리는 사공의 뒤를 따라 덕포리 동산으로 올라갔다. 윗골 아랫골이 있는데 신통이 묻힌 곳은 윗골이었다. 사공의 집에서 곧장 오르는 오솔길로 한 마장쯤 올라가는데 산길이 제법 가팔랐다. 산에는 새잎이 돋아나고 진달래가 등성이마다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있었다.
여기요……
사공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봉분이랄 것도 없이 땅이 봉긋하게 솟아오른 자리가 보였다. 우리는 거기서 제물을 늘어놓고 간단히 예를 올리고는 안 서방과 장쇠가 잡초 무성한 땅을 괭이로 팠다. 관도 없이 묻었는지 시커멓게 삭은 멍석이 보이고 그 뒤에서 삭은 나무뿌리 같은 그의 유골이 나타났다. 나는 아무 감정도 없이 눈물이 솟아나와 바람에 뺨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낄 뿐이었다. 칠성판 대신에 안 서방이 무명천을 꺼내어 펼쳐두었고 구덩이 속에 들어가 흙 속의 유골을 일일이 추슬렀다. 나는 그가 올려주는 것들을 받아 천 위에다 차례로 늘어놓았다. 맨 나중에 머리가 올라왔을 때에 나는 그것을 두 손으로 쳐들고 들여다보았다. 얼굴에 씌웠던 베가 들러붙은 채로 삭아서 얼굴 윤곽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유골 위에는 긴 머리카락이 붙어 있었다. 사이사이로 흰 머리카락이 보여서 그가 이제 중년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머리카락을 몇 번 쓸어보았다. 나는 그이의 유골을 수습하여 행담에 넣었다.
그날 다시 뗏사공 집에서 묵었다. 나는 노인이 평생을 아우라지에서 뗏목을 이끌고 한양까지 부려가던 사람이며 이제는 그의 아들이 뒤를 잇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비슷한 모양으로 늙은 그의 노처는 저렇게 숫기가 없으니 어찌 술이며 밥을 팔까 할 정도로 얼른 밥상을 들여 밀고는 문 뒤로 숨곤 했다. 창호지 너머로 안 서방과 술상 받아 대작하는 뗏사공 노인의 젊은 시절을 자랑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평다리 건너서 물금 지나고 개구멍소를 지나 다래여울 넘고 여우바우 나오고, 그 바로 밑에 바귀미 여울 지나면 또 바로 왕바우 서리, 왕바우 지나 진펄여울로 해서 벽탄 지나면 범여울이 나오고, 옛날에 새끼 범이 물 건너다 빠져 죽었다고 범여울이라 그러는 데요. 범여울 밑에 새범여울 그 아래가 옥바우 있지요. 옥바우 지나면 가진개 그 밑에는 열두절, 물이 쑥 올라갔다가 쑥 내려갔다가 열두절이 인다고요. 남면물 지나서 그 아래가 황새여울이고 황새여울 떨어져선 된꼬까리, 아주 여울이 험하고 급해, 거기서 떨어져 나가선 상산암 돌아나가 제남문으로 나갈 적에 바위가 꼭 문처럼 났는데 급물살이 쏠려 흐르지. 임기서 나온 물하고 송천서 나온 물하고는 아우라지에서 합수되고 이 밑으루 내려가면서 자꾸 합수되어 큰물이 되구요. 호호탕탕 가지마는 언제까지 그렇지도 않고 갑작스레 물이 좁아지고 급해지며 또 몇 고비가 기다리고 있기 마련이라.
나는 신통이 쓰던 바깥방에 그의 유골이 든 행담을 옆에 두고 ㈎梔?뒤척거렸다. 흥이 났던지 노인이 쉰 목소리로 부르는 소리 한 자락이 아득하게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 오늘 갈는지 내일 갈는지 맨드라미 줄봉숭아는 왜 심어놨나, 서산에 지는 해는 지고 싶어 지나 정들이고 가는 임은 가고 싶어 가나.
까무룩하게 잠이 들었다가 얼마나 잤는지 문득 깨었다. 고요한 가운데 어디선가 속삭이는 듯한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눈 감고 있을 때에는 바로 귓가에서 들려오다가 눈을 뜨면 멀찍이 물러가서 아주 작아졌다. 가만히 숨죽이고 그 소리를 들었다. 여울물 소리는 속삭이고 이야기하며 울고 흐느끼다 또는 외치고 깔깔대고 자지러졌다가 다시 어디선가는 나직하게 노래하면서 흐르고 또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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