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 5시 강원 정선군 강원랜드 카지노. 폐장을 1시간 앞둔 시간이지만 테이블마다 빈자리를 찾을 수 없다. 바카라 카드게임이 한창인 테이블에는 10여명이 서너 겹 둘러서 있을 정도. 객장 내 한 대형 은행 지점도 돈을 찾으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카지노 객장 중앙에 설치된 음료수대에는 커피를 마시던 이모(58)씨는 충혈된 눈으로 "이 시간에는 바닥에 칩을 떨어뜨려도 부정타기 때문에 줍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살벌하다"고 말했다. '2,785'로 찍힌 카지노 입구 전광판의 입장객 숫자는 밤새 줄지 않다 오전 6시 폐장시간이 돼서야 급하게 떨어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카지노 문을 나서자마자 오전 10시 입장 예약을 위해 곧바로 매표소 앞으로 일제히 달려갔다. 김모(64)씨는 "지금 줄을 서지 않으면 자리를 잡을 수 없다"며 "게임을 안 해도 자리를 팔면 20만원은 받을 수 있다"고 귀띔했다. 4년 전 외항선 선원으로 번 돈과 여관을 운영해 평생 모은 10억원 가량을 강원랜드에서 모두 날렸다는 그는 "가족들이 카지노 출입정지를 시켰지만, 내가 가서 다 풀었다"며 "패가망신한 다음에 남을 탓해봐야 무슨 소용 있겠냐"고 한숨을 내쉬었다.
강원랜드는 도박중독을 막을 목적으로 카지노 출입정지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본인이나 가족이 신청할 수 있다. 또 대리 베팅, 자리판매 등을 하다 적발되면 카지노 출입이 제한된다. "강원랜드 측이 간단한 상담 몇 번만 하고서는 출입 정지를 풀어주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나마나한 출입정지"라는 게 도박중독자들의 설명이다.
서울에서 대형 유통업체를 운영하다 3년 전 선배 부부와 이 곳에 들렀다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영월 쪽방촌에서 전전하고 있다는 김모(54)씨는 팔순 노모가 출입정지를 시켰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는 "출입정지를 당한 후 상담자가 얼마나 잃었는지, 돈이 얼마나 남았는지를 은근히 묻고 다 털렸다고 판단하면 귀향비 몇 만원을 챙겨주고 더 잃을 여윳돈이 있다고 판단하면 법적으로 문제 삼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게 한 뒤 출입정지를 풀어준다"고 말했다.
김씨 선배 부부도 출입정지를 몇 번이나 반복하다 수백억을 날린 끝에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했다. 그는 "도박중독치유 프로그램에 참가하거나 상담을 더 받도록 하지만 경치 좋은 곳 가서 잠 좀 자고 맛있는 음식 좀 먹고 오라고 하는 정도"라고 덧붙였다.
강원랜드는 한 사람이 월 15일 이상 카지노 출입을 할 수 없도록 제한한다. 하지만 이모(63)씨는 "50만원만 주면 주민등록증은 얼마든지 구할 수 있다"며 "강원랜드에서는 돈을 다 잃고 빈털터리가 된 사람만 출입정지가 되지 잃을 돈이 남아있는 사람은 언제나 환영 받는다"고 말할 정도였다.
강원랜드가 도박중독자에 대한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서울 고등법원은 지난해 1월 강원랜드 VVIP회원이었던 사업가 A씨가 "강원랜드가 내부규정을 어기고 도박중독자인 나를 출입시켜 115억여원을 잃게 만들었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강원랜드 측에 11억2,000여만원 지급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정덕 도박피해자모임 공동대표는 "정부는 내국인 카지노를 합법화하면서 도박중독 예방과 치료를 약속했지만 지켜지고 있지 않다"며 "도박중독 치료의 기본은 현장 격리인데도 강원랜드가 이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강원랜드는 "카지노 출입관리지침에 따라 장기 출입자는 도박중독 의무 상담을 받도록 하고, 출입제한을 신청할 경우 무기한 카지노 출입을 제한한다"며 "하지만 본인이 출입제한 해제를 요구할 경우 이를 거절할 근거는 없다"고 밝혔다.
정선=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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