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우에 불과했다. 에이스는 역시 에이스였다.
이만수 SK 감독은 16일 인천 문학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 김광현(24)을 선발로 내세웠다. 이 감독은 "성준 투수코치가 다른 투수를 1차전 선발로 올리자고 했지만 내가 밀어붙였다. SK의 에이스는 김광현 아닌가"라고 말했다. 이어 "광현이는 포스트시즌 경험(7경기 2승2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2.76)이 많은 투수다. 광현이가 살아야 우리가 살 수 있다"고 김광현의 어깨에 힘을 실어줬다.
이 감독의 선택에 대해 주변에선 걱정이 많았다. 올 시즌 내내 잔 부상에 시달리면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던 김광현이 큰 무대에서 에이스의 역할을 할 수 있을 지 의문표를 달았다. 김광현은 정규시즌에서 8승5패 평균자책점 4.30을 기록했다.
류현진(한화)과 함께 국내를 대표하는 왼손 투수 김광현이 돌아왔다. 전성기 때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플레이오프 1차전의 영웅이 됐다. 김광현은 "언론이나 팬들이 날 의심하고 '도박'이라는 말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며 "큰 모션을 보인 것은 가장 좋았을 때 모습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어깨 상태가 유지된다면 앞으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광현은 롯데전에서 선발로 등판해 6이닝 동안 5안타 1볼넷 10삼진 1실점으로 호투해 승리 투수가 됐다. 2008년 10월31일 잠실 두산과의 한국시리즈 5차전 이후 4년 만의 승리다. 또 10삼진은 자신의 포스트시즌 최다 탈삼진이자 선동열(1989년 태평양전 11개)에 이어 역대 플레이오프 2위 기록이다.
SK는 돌아온 에이스 김광현의 역투에 힘입어 2-1로 승리하면서 기선 제압에 성공했다. 역대 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을 승리한 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할 확률은 75%(28번 중 21번)였다.
SK와 롯데는 17일 같은 장소에서 플레이오프 2차전을 펼친다. SK는 윤희상을, 롯데는 송승준을 선발로 예고했다.
플레이오프 1차전은 김광현을 위한 무대였다. 지난 3일 LG전 이후 13일 만에 마운드에 오른 김광현의 구위는 살아 있었다. 볼 끝에 힘이 넘쳤고, 주무기인 슬라이더의 각도 예리했다. 투구수 95개, 최고 구속은 151㎞까지 찍었다.
김광현은 1회 2사 후 롯데 3번 손아섭에게 우월 2루타를 맞고 잠시 흔들렸지만 곧바로 안정을 찾았다. 4번 홍성흔을 삼진으로 돌려세워 이닝을 마무리한 뒤 5번 박종윤, 6번 전준우, 7번 황재균까지 4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내는 기염을 토했다.
3회 삼진 1개, 4회 삼진 3개, 5회 삼진 1개를 추가하면서 무실점 행진을 벌이던 김광현은 1-0이던 6회 최대 위기를 맞았다. 1사 후 대타 정훈에게 볼넷을 내준 뒤 손아섭에게 좌월 1타점 2루타를 맞고 동점을 허용했다. 이후 홍성흔에게 좌전 안타를 내줘 1사 1ㆍ3루에 몰렸지만 유격수 박진만의 호수비로 위기를 넘겼다. 대타 박준서의 타구는 다이빙 캐치를 시도한 박진만의 글러브로 빨려 들어갔고, 2루쪽으로 스타트를 끊은 홍성흔까지 잡아냈다. 김광현은 역전 위기에서 탈출한 뒤 펄쩍펄쩍 뛰며 기쁨을 만끽했다. 김광현은 데일리 MVP(최우수선수)에 선정되면서 상금 100만원과 호텔 숙박권을 받았다.
SK는 김광현이 내려간 뒤 막강 불펜을 가동했다. 엄정욱(7회)-박희수(8회)-정우람(9회)이 1이닝씩을 책임지면서 2-1, 짜릿한 한 점차 승리를 지켜냈다.
SK 타선에선 베테랑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4번 이호준은 0-0이던 2회 선두타자로 나서 상대 선발 유먼의 141㎞ 직구를 잡아당겨 왼쪽 담장을 넘기는 솔로 홈런을 터뜨렸다. '가을 사나이' 박정권은 1-1이던 6회 2사 3루에서 바뀐 투수 김사율로부터 1타점 좌전 적시타를 날렸다.
SK 마운드는 롯데를 상대로 14개의 삼진을 잡아내면서 플레이오프 정규 이닝 팀 최다 탈삼진 신기록을 작성했다. 종전은 해태가 1989년 태평양전에서 기록한 13개 삼진이다.
인천=노우래기자 sport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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