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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논쟁] 노벨상 과학분야 배출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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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논쟁] 노벨상 과학분야 배출 언제?

입력
2012.10.16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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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노벨 과학상을 언제쯤 받을 수 있을까. 매년 10월이면 어김없이 쏟아지는 탄식이다. 노벨상위원회는 이맘때쯤 노벨상 분야별 수상자를 연속으로 발표하지만 "코리아"라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 연구 논문 수 11위, 연구개발 투자총액 OCED 5위 등 각종 수치만 따지만 노벨 과학상을 받고도 남아야 하나, 현실은 정반대다. 노벨상 시즌이 오면 국내 과학자들은 되레 위축되고 죄인 아닌 죄인이 된다.

물리학ㆍ화학ㆍ생리학 및 의학ㆍ문학ㆍ평화ㆍ경제 등 6개 분야의 노벨상 중에서도 절반을 차지하는 과학 분야에서 우리는 수상자가 단 한명도 없는 건 왜 일까. 전문가들은 10년 내 수상자가 나올 가능성은 있지만 쉽지는 않을 거라는 데 방점을 찍는다. 지금과 같은 연구 풍토에서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일본 등 과학 강국들처럼 수상자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안도열 서울시립대 석좌교수는 "공부와 연구를 잘하는 사람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수월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분위기가 바뀌어야 한다"며 "기초과학 분야에서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고 이해를 심화해 가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남의 성과를 의식해 어설프게 흉내내기보다 우리에게 맞는 연구 방식을 통해 기초과학을 육성해야 노벨 과학상 수상의 토대가 구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왜곡된 교육평등주의가 걸림돌 작용… 수월성 인정·장기 연구지원 없인 요원"

● 안도열 서울시립대 우리석좌교수·미국 물리학회 및 IEEE 펠로우

10년內 수상 가능할지 몰라도 환골탈태 않으면 일회성 그칠 것

일본은 지금까지 2명이 문학상을, 올해 신야 야마니카 교수가 생리의학상을 수상해 모두 16명이 물리ㆍ화학ㆍ의학상을 수상하는 등 모두 19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일본에 대한 경쟁의식이 강한 탓인지 10월이 되면 '왜 일본은 받는데 우리는 왜 안 되는가'라는 질문과 '언제 어떻게 하면 우리도 노벨상을 받을 수 있을 까'하는 질문이 화두가 된다.

일본에 처음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안겨준 유가와 히데키 박사는 우리나라로 치면 지방대를 나와 1920년대 당시 일본에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양자역학을 친구인 토모나가 신이치로 박사와 함께 공부한 인물이다. 20년 이상을 한 주제에 파고들어 마침내 49년 '중간자 이론'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토모나가 역시 65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양자전기역학의 재규격화 이론으로, 연구실에서 30년 이상 씨름을 벌인 결과였다.

이들이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기본을 중요시하고 연구를 잘하는 사람을 장기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일본 과학계의 풍토가 큰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이 본격적으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인 시기는 메이지 유신인 1800년대 중반이다. 1945년 이후 본격적으로 서구 문명을 받아들인 우리와는 약 100년의 격차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과학분야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는 것은 단순히 '시간 문제'로 치부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일본에 서양의 과학, 뉴톤의 물리학과 미적분학이 전래된 것은 메이지 유신보다 훨씬 앞선 18세기 중엽 막부 시절이다.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기 이전에도 일본은 서구의 기초과학 지식으로 잘 무장된 지식인 계층이 존재하고 있었고, 이 기반 위에 수월성을 목표로 한 교육과 연구 시스템의 구축이 가능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일본인들의 노벨상 수상이 90년대 이후 지속적이라는 점이다. 한국도 어쩌면 10년 내에 단발성으로 노벨상을 받게 될 지 모른다. 그러나 교육 및 연구 환경이 환골탈태하지 않는 한 일본처럼 지속적으로 수상자를 내지는 못할 것이다.

노벨상이란 결국 연구자의 수월성에 관한 인정이다. 물론 정치적 고려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어떤 분야든 전 세계적으로 최고 수준의 성과를 내는 연구자 집단에 장기간 속할 수 있는 과학자들이 많아야 노벨 과학상에 근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평등주의가 강하다. 이 때문에 노벨상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첫 번째 단추부터 잘못 끼워져 있다. 미래의 노벨상에 근접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학생들이 모이는 과학고나 과학영재학교에 진학하면 내신 때문에 좋은 대학 진학이 불리하다. 평준화 고교의 학부모들이 결사반대 해서 비교내신제도를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제도가 노벨상의 싹을 미리 잘라버리는 셈이다. 일본이 메이지 유신 이후 일관되게 수월성 위주의 입시를 유지하고 있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자연과학 분야에서 5년 이상 하나의 주제를 좇아 연구하기란 한국에서는 무척 힘든 일이다. 국내에서 가능한 최장 기간의 개인연구지원은 창의적연구진흥사업으로 9년이다. 필자도 경험해 보았지만 창의연구 종료 후에 다른 지원 프로그램을 찾는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장기간 지속岵?연구 지원의 필요성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평가 시스템도 큰 이유가 된다.

사실 '어떻게 하면 노벨상을 받을 수 있나'는 잘못된 질문이다. 왜냐하면 노벨상이란 상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장기간 과학자가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고 이해를 심화해 가는 과정에 나타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지원하고 수월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격려해 줄 수 있는 사회에 대한 평가이기 때문이다.

해답은 어떻게 보면 간단하다. 공부와 연구를 잘하는 사람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수월성을 유지할 수 있게 격려해 주는 방향으로 우리 사회의 분위기가 바뀐다면 그 만큼 노벨상도 가까워질 것이다. 이를 위해 적어도 대학입시와 연구에서만큼은 수월성을 인정하지 않는, 왜곡된 평등주의를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노벨상에 올인한듯 과잉기대 이맛살… 기초과학 홀대 반성·적극투자가 첫발"

●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대한화학회 회장

일본 등 타국과 비교하기보다 우리실정 맞게 연구풍토 조성을

우리처럼 노벨 과학상을 애타게 원하는 나라도 없다. 노벨상 수상자만 나오면 우리의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믿는다. 물론 우리도 노벨상을 받아야 한다.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세계가 놀라는 기적을 이룩한 우리가 유독 기초과학에서만 뒤쳐져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노벨상 시즌이 돌아올 때마다 마치 우리가 무엇을 크게 잘못한 것처럼 심하게 자책하고 반성하는 모습은 꼴불견이다.

노벨상이 우리의 궁극적 목표일 수는 없다. 노벨상이 우리 문제를 해결해주는 도깨비 방망이도 아니다. 우리가 노벨 평화상을 통해 직접 경험한 명백한 역사적 진실이다. 노벨 평화상이 남북 평화를 실현시켜주지는 못했다.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45개국의 대부분이 선진국 대열로 올라서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대만이 그렇다. 노벨상을 받고 26년이 지났지만 대만의 청소년들이 과학에 열광하고, 세계가 대만의 과학에 박수를 치고, 대만의 국력이 크게 성장했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노벨상에 대한 허황한 환상은 버려야 한다.

과학 교육을 개혁하고,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고, 과학자의 자율성을 보장해주고, 유능한 과학자에게 충분한 투자를 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노벨상을 받기 위한 것이라면 그런 노력은 무의미하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기 위해 과학에 관심과 재능이 없는 학생들에게도 무작정 과학을 배우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노벨상을 핑계로 기초과학에 지나치게 매달리다가 자칫 산업경쟁력을 잃어버리게 될 위험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과학자의 윤리 수준을 신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불합리한 선택과 과도한 집중의 폐해도 외면하기 어렵다.

기초과학에 대한 인식을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기초과학이 미래의 성장동력을 개발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경제적 가치를 지나치게 강조해서 기초과학의 진정한 의미를 퇴색시켜서는 안 된다. '인류에게 가장 큰 혜택'을 가져다 준 과학자에게 수여한다는 노벨상의 취지를 무색하게 만들어서도 안 된다. 알프레드 노벨이 거금의 유산을 내놓은 것은 평생 돈벌이에만 급급했던 자신에 대한 반성 때문이었다.

물리학, 화학, 생리학으로 대표되는 기초과학은 우리 자신과 자연에 대해 유별난 호기심을 가진 인류가 애써 쌓아온 가장 소중하고 값진 지식 체계다. 기초과학을 통해서 밝혀낸 과학지식이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근거 없는 미신과 극심한 사회적 신분 차별을 당연하게 여기면서 어렵게 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우리에게 인간의 진정한 존엄성을 확인시켜주었고, 자유와 인권이라는 천부적 권리를 일깨워주었으며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이 필요한 이유를 밝혀준 것이 바로 현대의 기초과학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기초과학의 진정한 가치를 철저하게 외면해왔던 것은 인정해야 한다. 먹고 사는 일이 더 급했던 절박한 현실이 핑계였다. 이제라도 우리도 기초과학의 진정한 가치를 분명하게 인식해야 한다. 기초과학을 통해 진정한 선진국에게 걸맞은 국격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실제로 기초과학은 여유를 가진 선진국의 전유물이다. 기초과학에 대한 관심과 투자는 우리가 인류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동시에 우리 스스로 민주화된 과학기술 시대를 즐기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까지 경제발전을 위한 기술개발에 전력투구를 해왔고,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그런 우리가 기초과학에서 성과를 내지 못할 이유는 없다. 일본의 성과에 샘을 낼 이유도 없다. 일본은 현대 과학이 싹트던 때부터 한 세기 넘게 기초과학에 투자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는 고작 10여 년 전에야 뒤늦게 기초과학의 중요성을 인식했을 뿐이다. 남의 것을 어설프게 흉내내기보다는 우리 몸에 꼭 맞는 우리만의 제도를 만들어서 기초과학을 진짜 우리 것으로 만들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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