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오전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부근의 A은행. 입구에 '서민금융전담창구 2층'이라는 안내표시가 보였다. 1층의 일반창구를 지나 내부계단으로 올라가니 기업대출 등을 상담하는 창구가 일렬로 배치돼 있고 그 한쪽 귀퉁이에 '서민금융전담창구'라는 표지판이 달린 칸막이가 쳐 있다. 서민금융 상품만 별도로 취급하기 위해 최근 마련됐다. 성인남자 어깨 높이의 칸막이가 쳐 있는 것도 서민 고객의 프라이버시를 위해서다.
잠시 후 한 남성고객이 이 창구를 찾았다. "제2금융권에서 대출받은 돈 때문에 이자가 너무 많이 나가요. 저리의 바꿔드림론을 대출받았으면 좋겠네요." 상담 내용이 옆 창구까지 들렸다. 고액자산가들을 대상으로 한 프라이빗뱅킹(PB)처럼 별도 사무실이 아니어서 상담내용이 외부로 새어나가는 것이다.
10분 후쯤 40대 여성 고객이 서민창구에 들어섰다. 상담사는 신분을 밝혀달라고 요구했지만 이 여성은 잠시 망설였다. 이미 다른 고객의 상담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은행 관계자는 "창구가 붐비지 않아 상담원은 현재 한 명만 있다"며 "고객이 늘어날 경우 추가 배치를 고려해보겠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서민금융 전담지점으로 개설된 서울 미아동의 B은행. 창구에 일일이 '서민금융상담창구'라는 안내 표지판이 달려있어 새희망홀씨 대출 등 서민상품을 전용으로 취급하는 은행 지점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창구에선 통장을 개설하고, 체크카드를 재발급하는 등의 일반 금융업무가 진행 중이었다. 상담 직원은 "홍보가 아직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서인지 서민금융 상담 고객은 많지 않다"며 "타 지점의 일반창구에서 하는 업무도 병행하기 때문에 이름만 다른 은행지점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실제 9시 개점부터 3시간이 지난 이날 오전 내내 서민금융 관련 업무를 상담하러 온 고객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전세자금 대출을 위해 이날 은행을 찾은 정모(59ㆍ여)씨는 "서민금융 관련 전문 창구가 생겼다는 소식에 찾았으나 직원들은 타 은행에 비해 비싼 이자 상품만 권하고 상담내용도 형편없었다"며 "더 사정을 얘기하고 자세한 상담을 하고 싶었지만 일반 업무를 보는 사람들이 섞여 있어 10분 정도만 상담 받고 나왔다"고 말했다.
최근 은행들은 서민금융 전담창구를 잇따라 열고 있다. 우리은행이 상록수지점을 서민금융전담점포로 개설했고, 국민ㆍ신한ㆍ외환은행 등도 서울 영등포, 강북, 관악 등에 서민점포 또는 창구를 마련했다.
문제는 이러한 점포가 은행들 생색내기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고객 상당수가 노출을 꺼리는데도 창구가 개방돼 있는가 하면, 생계 때문에 은행을 찾기 힘든 서민들을 위해 영업점 운영 시간조차 조정되지 않고 있다. 전용점포라는 명칭이 부끄럽게 일반 금융업무를 함께 보는 일도 당연시되고 있다. 이 때문에 어렵게 창구를 찾은 서민들은 "돈이 안되니까 형식적으로 운영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쏟아내고 있다.
C은행 관계자도 "돈이 되는 PB센터처럼 조성하기는 한계가 있다. 은행이라고 손해 보는 장사를 할 수는 없지 않는가"라며 "서민창구는 금융당국 요구에 따른 구색 맞추기니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아줬으면 좋겠다"고 털어 놓았다.
이재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효율성이 높지 않은 서민창구개설 보다는 선진국처럼 은행이 많지 않은 저소득지역에 일반 점포를 개설해 줘 그 지역 특성에 맞는 상담 등을 전담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ㆍ사진=박관규기자 ace@hk.co.kr
김지현 인턴기자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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