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만으로 연간 10억원대의 소득을 올리는 농민이 있다. 경북 성주군 벽진면에서 27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학사농민 김형규(50)씨가 주인공이다. 버섯이나 축산이 아닌 순수한 농사만으로 10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경우는 극히 드문 일이다. 그 비결은 성실함과 뛰어난 농사기술에다가 정확한 판단력, 과감한 투자 등 경영기법을 접목한 데 있었다.
김씨의 올해 예상 농업소득은 약 10억원. 9월말까지 참외농사 수입이 660㎡짜리 비닐하우스 34개동에서 약 3억5,000만원이고 나머지는 벼농사에서 나온다. 벼농사는 김씨의 논이 33만㎡, 대신 농사를 지어주는 위탁경지가 16만5,000㎡ 정도다. 올해는 쌀값이 좋아 예상보다 수입이 좋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각종 영농비를 제외한 순수입은 6억~7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김씨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상근직원 1명과 산학협력 대학원생 3명, 귀농인턴 1명, 고정적으로 일을 돕는 '아주머니' 2명 등 7명. 참외 접목이나 이식, 모내기 등 바쁠 때는 인력 시장 등을 통해 필요한 일손을 해결한다.
그가 농사를 시작한 것은 1987년. 고등학교 졸업 후 군대를 다녀오고 나서다. "철이 들면서 집안사정을 살펴보니 기가 막혔다. 부모님은 땅만 보고 농사를 지었지만 자식들 키우느라 빚만 쌓여 있었다. 도시에 나가서 월급쟁이로는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농사에 승부를 걸어보자' 오기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타고난 성실함으로 농사를 키워갔다. 초보농사꾼 시절 그의 별명은 '맨발의 사나이'로 유명했다. 농사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고, 맨발로 들판을 뛰어다닌 덕분이다. "일하다 갑자기 필요한 게 생각나 읍내 농자재 가게에 가면, 멀쩡한 청년이 맨발로 돌아다니니까 약간 '이상한'사람으로 보곤 했다"고 말했다.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지게를 진 채로 식사를 하는 바람에 '지게 식사꾼'이라는 별명이 하나 더 붙을 정도로 열심히 뛰었다.
"일정 단계를 넘으려면 농사기술은 물론 '경영'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는 농사기술은 다른 농민이나 농업기술원 등을 통해 배웠다. 경영을 알기 위해 정부의 농업 지원정책 등을 철저하게 분석해 활용했다. 그래도 부족함을 느끼고 90년대 후반에 상주대(현 경북대 상주캠퍼스) 축산학과에 진학해 주경야독으로 체계적인 농업경영기법을 배웠다. "내게 맞는 혜택이 무엇인지 꼼꼼히 살쳤고, 여유가 생기는 대로 농지를 구입하고 농기계에 투자했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경북도 농민사관학교에서 축산기술을 배웠고 지금은 수도작반에 등록해 공부하고 있다.
특히 그의 과감한 투자는 주변 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20여년 전 50마지기(3만3,000㎡)의 땅을 단돈 250만원의 계약금으로 산 것은 유명한 에피소드다. 원래 주인이 김씨의 젊음과 패기, 비전을 믿었기 때문이다.
귀농인과 농업관련 대학생 등 후진 양성에 힘을 쏟고 있는 김씨는 올해 농산물 유통 개선에 기여한 공로로 농협중앙회에서 출하왕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전문 농업경영기법을 접목하면 얼마든지 농업도 기업화할 수 있다는 그는 최근 늘고 있는 귀농귀촌 희망자들에 대해 "무작정 덤볐다가는 실패하기 십상"이라며 "시ㆍ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실시하는 귀농지원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고, 매달 120만원 정도 받으며 농사기술도 배울 수 있는 농업인턴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자신의 근본은 농업이라고 여기는 김씨는 "원스톱 농가를 이루기 위해 축산업에도 도전하겠다"며 "아들이 물려받아 더 큰 농사꾼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홍국기자 hk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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