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순의 집이라지만 시골의 민가여서 낮은 토담에 겨우 초가를 면한 기역자의 기와집이었다. 그들은 물처럼 조용히 마당으로 스며들어 안방 건넌방 사랑으로 돌입하여 아녀자는 모두 한방에 몰아넣고 손발 묶어 이불을 덮어놓았고 하인 둘은 묶어서 광에 처박아두었으며, 잠자고 있던 이준의 상반신에 두루마기를 씌워 그대로 결박하여 장정들이 떠메고 나왔다. 그들은 우암산 기슭으로 올라가 이준을 소나무에 묶어놓고는 덮어씌웠던 두루마기 자락을 헤쳐 얼굴을 내놓게 했다.
네놈들은 누구냐? 내게 뭣 때문에 이러느냐?
이준이 어둠 속에서 시커멓게 자기를 둘러싼 장정들을 향하여 물었으나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 앞으로 나서더니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서일수 손천문 대행수의 목숨 값을 받으러 왔다.
이준은 그제야 저들이 천지도인의 일당들인 것을 알아채고 어찌 되었든 모면할 방도를 재빠르게 생각해보았다.
너희 천지도는 이미 오래전에 국법에 의하여 사문난적으로 판명나지 않았는가? 나는 나라의 록을 먹고 사는 관리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거늘, 어찌 이런 무도한 짓을 자행하는가?
뭘 저런 놈의 구구한 말을 듣고 있소? 어서 쳐 죽입시다!
장정 하나가 분김에 그의 묶인 몸통을 발로 내지르고 외쳤는데 앞에 섰던 사람이 그를 밀어내고는 말했다.
그것이 어떤 자들의 나라인가? 일본의 조종을 받는 허깨비 같은 권력자들이 차지한 정부를 백성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너도 조선의 백성으로서 척왜양하려는 우리의 충정을 모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준은 어쩐지 듣던 목소리여서 어둠 속에서도 그를 살펴보려고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았다. 그의 키며 몸짓을 문득 알아본 이준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너 혹시 신이 아니냐?
그의 입에서 자기 이름이 흘러나오자 이신통은 잠깐 대답하지 않고 침묵했다. 사정을 알고 있던 활빈당 장정 몇 사람도 묵묵히 지켜볼 뿐이었다. 이윽고 이신통은 자신을 밝혔다.
그대가 내 혈육이라는 것이 욕스러울 뿐이다. 너는 아버지 어머니께 천추의 한을 품고 돌아가시게 하였고, 이제 다시 의인들을 잡아 죽였으니 그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신통이 뒤로 몇 걸음 물러났고 활빈당 장정 하나가 환도를 빼어들고 앞으로 나섰다.
신아, 살려다오!
이준이 외쳤지만 장정은 머뭇거리지도 않고 그의 몸에 칼을 꽂았다. 그들은 소나무에 묶인 이준의 시신을 남겨두고 올 때처럼 조용히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우암산을 넘어갔다. 이신통은 그길로 괴산 충주를 거쳐서 강원도 횡성 소구니골 박도희의 집에 당도했다. 신통은 박도희에게 이복형을 죽인 전말을 이야기하고는 참으로 가슴속에 쌓였던 모든 것을 쏟아내려는 듯이 실컷 통곡했다고 한다.
횡성으로 박도희 선비를 찾아간 지 다시 두 해가 지나갔다.
나는 그동안 매해 시월 말경이면 보은을 시집이라 생각하여 찾아가곤 했다. 시누이 덕이는 그때마다 노성이의 옷가지를 지어두었다가 내주곤 했고 나를 위해서도 집에 가서 달여 먹으라고 보약재를 꾸려주곤 했다. 지난번 나들이에는 장쇠가 따라나섰는데 이제는 그도 막음이에게서 첫아들을 보아 아비가 되었고 안 서방은 할아버지가 되었다. 하루는 부여댁과 찬모와 마당 안 우물가에서 푸성귀를 다듬고 있었는데 장쇠가 떠꺼머리에 두건 동인 젊은이를 데리고 문 안에 들어섰다.
보은서 방자를 보냈습니다.
젊은이는 손에 서신 한 장을 들고 서 있었다.
왜 무슨 일이 났다던가?
저야 모르지요. 이 댁에 급히 전하라 하여 달려왔을 뿐입니다.
젊은이는 내게 서신을 전하고는 이내 핑하니 사라졌다. 나는 젖은 손을 앞치마에 닦고는 마루에 앉아서 봉서를 뜯어 읽어보았다. 덕이가 언문으로 참하게 써내려간 사연은 먼저 집안의 안부며 노성이에 대하여 묻고, 일간 집에 들르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오라버니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람이 지금 집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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