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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1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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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139화>

입력
2012.10.14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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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의 총순 이준은 관보를 통하여 최경오 교주가 서울에서 교수형을 당한 사실을 알고 나서 가까운 시일 내에 서 모가 처가에 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는 마을 사람 하나를 지목하여 상금을 내걸고 서 아무개가 음 씨 댁에 오면 즉시 발고할 것을 다짐해두었다.

칠월 초사흗날에 기찰에게서 급한 연락이 들어왔다. 서일수가 처가에 왔다는 것이었고 이준은 순검 이십여 명을 동원하여 율봉마을을 급습했다. 총순의 직접 지휘 아래 순검들은 무기를 들고 음 씨의 집을 둘러쌌다. 그들은 양총도 있었고 대부분 구식 무기인 칼과 화승총이었으나 막상 집 마당으로 쏟아져 들어가서는 그런 무기가 어딘지 우스꽝스럽게 되었다. 총순인 이준도 일본군의 신식 장검 사벨을 차고 있었지만 칼을 뽑을 일도 없었다. 그들이 요란하게 마당으로 몰려들자 맞은편 방문이 열리면서 장본인이 얼굴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그는 맨상투 바람으로 상반신을 내밀고 마당의 순검들을 향하여 외쳤다.

내가 서일수다. 소란 피우지 말고 잠깐 기다리라.

하더니 침착하게 흑립을 쓰고 바지저고리 위에 여름 배자를 걸치고는 마루 아래로 내려섰다. 이준은 뒷전에서 아무 말 없이 그가 포박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사흘 동안 청주 옥에 구금되었다가 즉시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그리고 손천문이 어쩌면 청주 관내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발고가 들어온 것이 그로부터 십여 일 지나서였다. 지목이 들어오기를 장터에서 손천문이 유유히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기찰을 풀어 알아보았으나 그냥 지나간 것인지 관내에 머물고 있는지 알 길이 없었다. 손천문은 보은 집회와 갑오년 난리 이래로 일대에 널리 알려져 있던 인물이었다. 일찍이 손천문이 차린 봉도소가 국사봉 아래 솔뫼마을에 있었으나 관군과 일본군의 토벌로 온 마을이 불타고 주민들도 죽거나 달아나 폐촌이 되어 있었다. 순검 기찰들이 광범위하게 수소문해보니 그를 청주 근방에서 보았다는 주민들이 많이 있었다. 종합해본즉 그가 관내의 외곽에 머물고 있을 것이며 가끔씩 장을 보러 읍내에 들어오는 것 같다는 소문이었다.

다시 보름쯤 지났을 때 드디어 그의 거처가 알려졌는데 보은에 가까운 속리산 자락의 깊은 골짜기였다. 이번에도 이준은 순검 병력을 이끌고 대낮에 산외면의 거처를 급습했는데 손천문은 집 밖에 나와 있다가 먼 데서 순검들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도 달아나지 않고 초연한 태도로 포박을 당하였다. 손천문은 그 무렵에 아무 곳이나 버젓이 출몰하곤 하여 지역 도인들이 관헌의 지목을 받으면 어쩌겠느냐고 걱정했고, 그럴 때마다 손은 처연한 낯빛이 되어 대답했다고 한다.

스승님께서 몸소 순교하셨으니 내 어찌 구구히 살기를 도모하여 몸을 피하겠소? 내 반드시 도에 순하여 선사의 뒤를 쫓으리다.

마침 이신통은 집에 없었으므로 화를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두 차례나 천지도의 마지막 두령들을 체포한 이준의 관운은 활짝 열리게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주위에서는 총순 이준이 곧 경무관 직임을 받게 될 것이라고 모두들 부러워하였다. 손천문 역시 잠깐 구금되어 있다가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서일수와 손천문 두 사람은 그해 팔월 중순경에 스승의 뒤를 따라 한성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했고, 시신은 이번에도 이신통이 간수장 유영길과 애오개 경주인 등 서울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수습하여 한양 동교(東郊)의 공동묘지에 묻었다.

이신통은 추석 무렵에 다시 청주 근방으로 돌아온 것이 분명했다. 그것은 박도희가 나중에 횡성에 온 신통에게서 들었기도 하지만 한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에 청주의 도인들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신통은 곧 일대의 천지도 대두들 가운데 활빈당이 되어 있는 젊은 도인 칠팔 명을 모아서 저녁 무렵에 청주 읍내로 들어갔고 그들은 모두 행상의 차림새였다. 읍내 주막에서 술을 마시다가 자시가 다 되어 그들은 조용히 이준의 집으로 갔다. 주위의 민가마다 모두 불이 꺼졌고 깊은 밤이라 동네 길은 인적이 끊겨서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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