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조망은 별 기술이 필요 없는 단순 구조물인데도 역사는 뜻밖에 오래지 않다. 겨우 150년 전쯤에야 미국의 농장 여러 곳에서 착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걸 1874년 조지프 길든이라는 13살짜리 목동이 특허를 냈다. 양들이 장미나무 옆 울타리는 넘지 않는 걸 보고 두 가닥으로 꼰 철사 중간중간에 장미가시 모양의 철사를 끼웠다. 마침 가축 떼들의 철로접근으로 골머리를 않던 철도회사들이 대량으로 사들여 철로변 울타리를 치면서 꼬마는 벼락부자가 됐다.
■ 철조망이 군용으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건 1차 세계대전 때였다. 참호를 겹겹이 둘러싼 철조망은 전쟁양상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았다. 말들이 철조망에 돌격하려 들지 않아 이 때를 기점으로 기병대의 효용성은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 적의 기관총을 무력화하면서 철조망 방어를 돌파하기 위한 무기로 고안된 것이 프랑스 솜므전투에 처음 등장한 탱크였다. 이후 철조망은 전 세계 모든 군사지역에서 대립과 분계의 상징이 됐다. 우리 155마일 휴전선처럼.
■ 가시철사를 면도날 같은 철편으로 대체한 외에 철조망 구조는 최초 형태에서 크게 바뀐 게 없다. 그래도 방호력은 그 때와 비교할 것이 아니다. 휴전선 철조망만해도 주변에 빼곡한 지뢰지대와 탐조등, 폐쇄회로(CC)TV, 야간 열상관측장비(TOD) 등으로 이중 삼중 보완돼 있다. MDL(군사분계선)서부터 DMZ(비무장지대) 남단까지 3겹 철책에다 꼭대기엔 다시 환형 철조망을 똬리처럼 얹어 외견상으론 이런 철벽이 없다. 그런데도 번번이 뻥뻥 뚫린다.
■ 종종 휴전선 방어체계를 둘러 볼 기회를 갖는다. 앞서의 기존설비에다 자동사격장치와 연동된 로봇감시장비, 무인정찰기, 첨단영상기기 등의 화려한 추가장비 설명에 새삼 마음 든든했던 게 지난 봄이다. 그러나 이번 귀순 북한병사는 철조망을 손으로 벌려 넓힌 틈새로 간단하게 넘어 들어왔다. CCTV는 '또' 작동하지 않았다. 해당부대 지휘관은 "3중 철책을 과신했다"며 고개를 떨궜다. 철조망이 아니라 태만한 군기와 안이한 부대운용이 늘 문제다.
이준희 논설실장 jun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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