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에 이르게 한 단초가 된 태광실업 세무조사에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이 개입했음을 보여주는 동영상이 국정감사장에서 공개됐다. 이 동영상은 지난해 3월 한 전 청장에 대한 검찰 수사과정에서 안원구 전 서울국세청 세원국장과의 대질신문을 담은 것이다. 한 전 청장은 대질신문에서 "안 전 국장을 태광실업 세무조사에 투입시키려 하다가 그만뒀다"고 진술했다.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에 대한 혐의를 잡기 위해 베트남 현지법인 세무조사가 필요하던 차에 방한한 베트남 국세청장의 협조를 얻을 목적으로 그와 친분이 있는 안 전 국장을 만찬자리에 배석시켰으나 잘 알아보지 못해 계획을 철회했다는 것이다.
세무조사 권한은 국세청 본청이 아닌 지방청에 있고 국세청장은 일체 개입할 수 없도록 한 현행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이런 중대한 진술을 확보하고도 공개하지 않은 사실이 이번에 드러났다. 당시 검찰은 대질조사를 미루다 언론의 지적을 받고서야 뒤늦게 대질에 나서는 등 소극적인 태도로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검찰은 결국 한 전 청장의 태광실업 표적 세무조사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분하고, 인사청탁용 그림 상납과 주정업체로부터의 자문료 수수 혐의 등 개인비리만으로 기소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법원에서 모두 무죄판결이 났고 한 전 청장은 면죄부를 받은 상태다.
한 전 청장은 태광실업 기획세무조사를 적극 주도했을 뿐 아니라 서울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 문제 등 이명박 대통령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풀 열쇠를 쥔 핵심 인물이다. 이 때문에 2년 가까운 해외도피에 권력의 비호가 작용했을 거라는 소문이 많았다. 지난해 초 느닷없는 귀국도 '사전에 수사 수위를 조율한 기획입국'이라는 의혹이 나왔다. 한 전 청장의 권력형 비리 연루 의혹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으로 남아있다.
현 검찰 수뇌부는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과 내곡동 사저부지 매입 의혹 등의 수사에서 보듯 살아있는 권력에 유독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이러한 의혹과 부실수사는 새 정부가 들어서고 시간이 흐른다고 결코 묻히거나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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