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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바람과 별빛, 동굴 닮은 텐트… 인간의 야생 유전자를 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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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바람과 별빛, 동굴 닮은 텐트… 인간의 야생 유전자를 깨운다

입력
2012.10.12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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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어나거나 자유롭고 싶은 욕구… 인연의 끈서 탈피 오롯이 혼자로먹고 자고 노는 원초적 행위… 1만년전 삶을 '코스프레'하듯한밤 고요와 고독에 휩싸이면 잊고 산 내면의 소리에 귀 쫑긋

영화 '아바타'의 어떤 장면들처럼,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보이지 않는 끈들로 엮여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익숙한 공간이 주는 안정감 혹은 소중한 뭔가를 잃어버린 뒤 느끼는 상실감이 사실은 그 끈들이 두터워지거나 갑자기 끊겨버린 결과라는 생각. 가령 비행기로 여행을 할 때 도착지에서 느끼는 피로감은 공간과 우리를 잇는 끈들이 인장력을 잃고 끊겨버린 영향일지 모른다. 우리는 낯선 도시에서 낯선 존재(사람이든 거리든 가구든)들과 새로운 인연의 끈, 요컨대 연줄이나 안면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애써 잇는다. 그 안간힘을 부추기는 것도 끈의 불수의적(不隨意的) 힘이라는 생각. 존재에 얽힌 끈의 가닥 수와 굵기, 탄성과 내구성은 존재마다 다르고, 관계마다 다르고, 또 관계 맺는 상호간에도 동등한 것은 아니어서 누구는 사랑을 잃고 울고 누구는 사랑을 끊고 웃는다.

그 끈들이 죄다 성가실 때가 있다. 자신을 옭아매는 동앗줄이거나 말뚝에 묶인 목줄 같을 때가 있다. 그로부터 벗어나고픈 충동, 잠깐이나마 자유로워지려는 욕망으로 우리는 캠핑을 간다.

그때의 캠핑장은 인연도 전자파도 미치지 않는 공간, 모든 소중하고 성가신 끈들로부터 벗어나 오롯이 혼자(혹은 우리)일 수 있는 실존적 공간이 된다. 물론 그런 공간은 가상적ㆍ관념적 공간이다. 호적과 지적(地籍)의 장악력 바깥으로, 와이파이보다 먼저 가서 머물 곳은 현실적으로는 없다. 또 그런 공간이 실재하더라도 인연의 끈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는 없을지 모른다. 약 600만년 전부터 농경을 시작하던 1만년 전까지 인간은 사냥감을 찾아 떠돌았다. 그 야생의 유전자가 유달리 질긴 이들이 있다. 그들은 캠핑장에서,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사나운 짐승들로부터 몸을 숨기던 수렵ㆍ채취의 인간들이 동굴이나 숲 그늘을 찾아 들던 그 유구하고 본질적인 삶을 '코스프레'한다.

캠핑이 대중적 레저로 각광받기 시작한 게 불과 4, 5년 전부터다. 캠핑족이 폭증하면서 산림청이나 지자체가 운영하는 캠핑장 예약은 명절 기차표 구하는 것만큼 어려워졌고, 상대적으로 비싼 사설 캠핑장도 주말 예약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캠핑장이 공식화 유료화하면서 풍광 좋은 두어 평만 있으면 어디든 텐트를 치던 호시절도 끝난 듯하다. 갓 캠핑의 묘미에 빠져들어 목돈 들여 장비를 장만한 초보 캠핑족들은 마땅히 갈 데가 없어 몸달았고, 오랫동안 느긋한 캠핑을 즐겨온 역전(歷戰)의 캠핑족들은 지금의 변화 자체가 영 못마땅한 눈치다. 이래저래 캠핑장 분위기도 예전과 사뭇 달라졌다.

캠핑족에는 크게 두 부류가 있다. 자리를 잡자마자 텐트나 그늘막(타프)을 치는 사람과 대충 짐만 부려놓곤 코펠과 버너부터 꺼내거나 어슬렁거리며 즐기려는 사람. 조리대 세트에 테이블 식탁보까지 구비하고 다니는 사람과 소반 크기의 접이식 테이블에 주먹만한 버너만 챙겨 다니는 사람.

좋은 장비를 충실히 갖출수록, 이동은 좀 성가셔도, 캠핑은 쾌적해진다. 그래서 어지간히 경험을 쌓기까지는 장비가 늘어나기 마련이다. 반면에 캠핑은 일상의 편리로부터 벗어날수록 제맛이 난다고 믿는, 요컨대 불편을 즐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원리주의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물질적 편리의 과도한 추구는 이질적이고 심지어 이단적이다. 캠핑 고수의 짐 부피가 초보들의 그것과 대체로 흡사한 것은 그런 까닭이다. 물론 그들은 소수다. 캠핑(장) 문화는, 자연이다 뭐다 하면서 아닌 척 하곤 있지만, 이미 상업 소비문화 속에 깊숙이 끌려들어간 듯하다. 발포매트가 자충(自充)매트로 야전침대로 진화하고, 간이의자가 리클라이너로 대체되는 동안, 야생이나 자연의 위장막도 헐거워졌다. 근래 들어선 캠핑장 가운데 전기시설을 안 갖춘 곳은 드물고, 웬만한 데는 온수 샤워장도 설치돼 있다.

물론 최고의 장비로도 일상의 편리에 따를 수는 없다. 그것은 지퍼로 여닫는 두 겹 천 텐트가 아무리 좋아도 대문에 현관문 방문까지 갖춘 집의 쾌적함에 비할 수 없다는 사실만 상기해도 분명해진다. 그러므로 캠핑은, 양상이 아무리 달라져도, 불편 위에 작은 편리의 공간을 구축하는 놀이라는 개념적 범주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리고 지금의 캠핑 러시는, 그 불편이 일상의 끈들로부터 벗어나 하늘과 바람과 별빛 속으로 탈주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로 비싸지 않다고 판단한 이들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의미다. 장비와 캠핑장의 편의 외에도, CF나 오락방송 등 다양한 상업적인 이미지 홍보 덕도 있을 것이다. 캠핑이 순수나 낭만의 몽상가, 혹은 일부 사회부적응자들의 퇴행적 오락의 기미를 벗어 던진 것도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

캠핑은 한 마디로 야외 숙식이고, 그 중심 공간은 뭐니뭐니해도 텐트와 타프다. 텐트를 치는 일은 그 자체만으로 우리 안에 잠재된 공간에 대한 감각을 자극한다. 관록의 캠핑족은 동선과 시간대별 태양의 궤적, 바람의 동향, 프라이버시 등을 감안해서 최적의 자리와 방향을 찾는다. 수평과 수직, 안정적인 각도를 구현해야 하는 텐트 설치는 매뉴얼에 나와 있는 '기술'일 뿐이어서 금세 익힐 수 있다. 하지만 한정된 공간- 그곳이 바닷가 모래언덕 솔 숲의 빈터든 자연휴양림의 데크 위든- 안에서 최대한의 편의와 조화를 추구하는 일은 '감각'의 영역이다. 요컨대 캠핑장은 삶의 공간을 견학하고 직접 설계하고 실습할 수 있는 학습 공간이다. 경험과 기술, 장비의 설치 편의성 등에 따라 다르겠지만 텐트와 타프를 설치하는 데 적어도 한두 시간은 걸린다. 먹고 놀고 쉬고 자는 틈틈이 노동도 해야 한다. 취사하고 청소하고 정리하고 잠자리 보고…. 두어 평 남짓의 제한된 공간 안에서 우리는 압축된 가사 노동을 배우고 익힌다. 학습과 노동조차 소꿉놀이처럼 유희가 되는 공간이 캠핑장이다.

밤과 새벽. 술과 분위기에 얼근히 취한 자리들이 정리되고, 모닥불 가의 수런거림도 가신 뒤 어둠에 잠긴 캠핑장은 무섭도록 고요해진다. 텐트 안에 들 시각.

텐트는 천으로 된 동굴이다. 그 원형적 주거공간은 성가시고 억압적인, 때로는 위협적이기도 한 모든 바깥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주는 최소한의 방어막이다. 그 막은 취약하고 내부는 옹색하지만, 또 그래서 본질적인 공간일 수 있다. 우리는 그 안에서 운신의 절제를 익히고 작은 소음과 동정에도 첨예해지는 감각을 경험한다. 세상이 고요해지면 내면의 수선스러움이 도드라지기 마련. 어수선함과 대비되는 침묵과 고독의 공간 안에서 우리는 온전히 자신에게, 가장 본질적인 관계의 가닥들에 몰두하고, 어지럽게 얽혀버린 끈들을 가지런하게 풀어보려는 여유도 누릴 수 있다. 조심스레 텐트의 지퍼를 열면 자신이 깃들인 주변 공간이 달빛 속에 펼쳐진다. 자리의 환기는 떠나 온 일상의 환기로 이어지고, 그 순간 비로소 자신이 캠핑을 오게 된 까닭, 보다 길게는 살아오는 동안 미처 천착하지 못했지만 본질적일 수 있었던 삶의 어떤 올(사연)을 더듬게도 된다. 거창하게 말해, 그 순간의 텐트 안은 일상이 환기되는 드넓은 시공간으로 확장된다. 그 안에서 누구는 잭 런던이 말한 '야성적 핵심'을 만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아늑한 침대를 그리워하며 밤새 몸을 뒤척이기도 한다.

캠핑에는 떠나기 전과 돌아온 뒤의 수고가 따른다. 머물 장소를 물색해야 하고 장비와 먹거리를 챙겨야 한다. 돌아와서는 씻고 말려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정돈해야 한다. 소용된 장비와 아닌 것을 선별하고, 잉여와 결핍을 따져 버리고 보충할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 번거로움을 통해 우리는, 최대한 단출해지려는 충동과 보다 편해지려는 충동 사이에서 머뭇거리며 나아가는, 보통의 일상과 접속한다. 평소화한다.

그러므로, 캠핑에 대한 막연한 매력이 실질적인 쾌락으로 자리잡는 과정은 불편과 편리 사이, 안주와 탈주 사이에서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절충점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 절충점은 언제나 유동적이고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관념 속의 미답지인 캠핑 공간이 소비자본의 뜨거운 욕망 안에 포섭된 상황에서 캠핑의 유혹은 소비의 유혹, 편리의 유혹에 급격히 취약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개개의 캠핑장들이 겪고 있는 최근의 변화는 소비시대의 인류가 경험한 계통의 변화, 문명의 변화를 압축적으로 재현하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캠핑장이 늘어날수록 관념의 캠핑장들은 사라지거나 멀어지고 있다고 믿는 이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변화의 양상은 지나치게 가파르고 전망 역시 어두운 것도 사실이다. 절충점을 찾는 수고는 캠핑을 욕망하는 이들뿐 아니라 캠핑장이라는 공간 자체의 숙제이기도 할 것이다.

최윤필 선임기자 proos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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