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 플레밍은 남자의 로망이 무엇인지 아는 작가였다. 그는 제임스 본드에게 멋진 스포츠카와 최신식 특수장비를 선물했다. 지금이야 눈이 휘둥그래질 만한 장비들이 앞다퉈 나오고 있지만 1960, 70년대만 해도 최고의 얼리어답터는 제임스 본드였다.
'007'은 거의 일반명사가 돼버린 '007가방'이 유래한 작품이기도 하다. 본드가 처음 특수장비가 든 서류가방을 들고 등장한 작품은 2탄 '위기일발'(1963)이다. 초기엔 적외선 망원경이 달린 장총과 탄약, 칼 등 구색이 단출했다. 비밀병기를 탑재한 자동차와 신무기와 특수장비가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한 것은 3탄 '골드핑거'(1964)부터다. 기관총과 방탄막, 탈출용 특수의자 등을 장착한 애스턴 마틴 DB5는 이후 후속 시리즈의 본드 차는 물론 다른 액션 영화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애스턴 마틴 시리즈는 가장 007다운 본드 카로 꼽히는데 20탄 '어나더 데이'(2002)에는 차체가 눈에 보이지 않게 하는 기능을 갖춘 V12 뱅퀴시 모델이 선보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본드에게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가 시계다. 패션 소품으로도 훌륭하지만 비밀 무기를 감추기에도 적당하기 때문에 팬들에겐 늘 관심의 대상이다. 8탄 '죽거나 살거나'(1973)에선 초강력 자기장으로 총알을 막아낼 수 있는 롤렉스 시계가 등장했고, 17탄 '골든아이'(1995)에는 레이저빔 커터가 내장된 오메가 시계가 나왔다. 18탄 '네버 다이'(1997)에 쓰인 오메가 시계엔 원격 기폭 장치가 장착됐다.
신기한 기능을 갖춘 카메라와 휴대전화는 007을 보는 즐거움 중 하나다. '위기일발'에선 보이스 레코더가 내장된 카메라가, 16탄 '살인면허'(1989)에선 엑스레이 촬영이 가능한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등장했다. '네버 다이'에는 에릭슨이 협찬한 휴대전화가 이목을 집중시켰다. 지문을 조회, 분석할 수 있고 지문 인식 잠금 장치를 해제할 수 있으며 자동차를 원격 조종할 수 있는 전기 충격기 겸용 휴대전화였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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