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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선 돈 버느라 죽어선 돈 없어서… 불법체류 노동자의 '발 묶인 귀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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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선 돈 버느라 죽어선 돈 없어서… 불법체류 노동자의 '발 묶인 귀향'

입력
2012.10.1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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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사고로 목숨을 잃은 필리핀 출신 불법체류 이주노동자가 주검이 돼서도 안식을 취하지 못하고 있다. 시신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데도 가난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탓이다.

서울 성북구 종암동 56번지. 청계천8가로 이어지는 정릉천 옆에 위치한 이곳엔 30년 이상 된 3층 높이의 낡은 건물이 촘촘히 들어서있다. 70~80년대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던 봉제공장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사라졌지만, 영세한 봉제공장 수십 곳에서 '드륵, 드르르륵' 하는 미싱소리가 지금도 밤낮없이 흘러나온다. 필리핀 출신 불법체류 이주노동자 베르나르도 노날드(37)씨가 화재로 숨지기 직전까지 하루 16시간씩 일하던 자수 공장도 이곳에 있다.

불이 난 건 7일 오전 2시30분쯤. 공장 3층에 임시로 만든 쪽방 쪽에서 매캐한 연기가 퍼지기 시작하자 인근 공장에서 야근을 하던 불법체류 노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누군가는 불길에 싸인 숙소 쪽을 향해 "어서 탈출하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하지만 누구도 소방서에 화재 신고를 하지 못했다. 필리핀 출신 10년 지기 친구 리토(37ㆍ가명)씨는 "노날드가 보이지 않았지만, 대부분 불법체류자 신분이라 119에 전화 걸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인근 편의점 직원의 뒤늦은 신고로 119구조대가 왔지만, 젖은 이불을 감싼 채 탈출을 시도하다 끝내 숨을 거둔 노날드씨 시신 앞에서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13년째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는 필리핀인 제이슨(33ㆍ가명)씨는 "노날드는 다른 필리핀 친구들보다 형편이 어려워 수당을 더 받기 위해 하루 16시간씩 일했다"며 "빵으로 끼니를 때울 정도로 돈을 아껴가며 성실히 일했는데, 고향에도 못 돌아가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노날드씨가 산업기술연수생 신분으로 한국에 온 건 14년 전인 1998년. 1년 비자가 만료된 뒤부터는 다른 연수생과 마찬가지로 불법체류자가 됐다. 경기도 수원의 한 프레스 공장에서 일하며 처음 받은 월급은 50만원. 크지 않은 돈이었지만 필리핀 고향집에는 친척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부모와 다섯 동생, 아내와 두 명의 아이에 더해 사촌들까지 부양해야 할 책임이 그의 어깨에 지어졌다.

몸을 혹사해가며 가족을 위해 일했지만, 노날드는 주검이 돼서도 편안히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할 처지다. 필리핀 가족은 시신 운구비만 1,000만원 이상이 드는 비용을 낼 처지가 못된다. 노날드씨 아내는 이주노동자로 나서려다 브로커에 몇 차례 속아 500만~600만원이나 되는 돈을 날렸다고 한다.

이주노동자 선교활동을 하는 바올라(60)목사는 "7일 화재 이후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매일 단속을 나오고 있어 불법체류자 신분인 필리핀 노동자들도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다"며 답답해 했다. 보다 못한 이웃 주민들과 한 교회 신도들이 11일 장례비용의 3분의 1가량인 100여만원을 먼저 내는 조건으로 노날드의 시신을 화장했다. 필리핀은 가톨릭 국가여서 화장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하루 8만원씩 시신 안치비용이 불어나는 탓에 필리핀 가족을 겨우 설득했다. 하지만 항공료 때문에 노날드씨 유골이 언제 필리핀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는 아직 기약이 없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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