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경기 동두천에 강의를 하러 갈 일이 있어서 전철을 탔다. 동두천에 닿으려면 종로 3가역에서 족히 한 시간은 넘게 가야한다. 다행히 두어 정거장 지났을 때 내 앞에 앉아있던 분이 일어서기에 내가 거기 앉을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일산에서부터 전철을 타고 내려온 터라 다리가 뻣뻣해지는 느낌이었는데 다행이다 생각하며 앉아 갖고 있던 책을 펼쳐 읽었다.
그때 내 옆에 앉아계시던 아주머니가 말을 걸어왔다. 나이는 어림잡아 예순 정도 돼 보였다. 내가 깨알같이 작은 글씨가 박힌 문고본 책을 읽고 있으니까 신기했던 모양이다. 처음에는 왜 그렇게 작은 책을 읽느냐, 글씨가 보이기는 하느냐 물어오기에 글씨 보기는 좀 힘들지만 책 크기가 작고 가벼워서 늘 갖고 다니기 좋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아주머니는 처음엔 그러냐고 하면서 수긍하는가 싶더니 이내 뭣이 맘에 안 드는 것인 양 자기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공부하는 책도 아닌 거 같은데 뭘 그리 열심히 보냐는 것이다. 내가 그 말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으니까 아주머니는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자기는 아들과 딸이 각각 몇 씩 있는데 다들 시키지 않아도 공부를 잘해, 지금은 대기업에 다니며 돈도 많이 번다는 말이다. 말을 하다 보니, 지금 이 나라가 시끄럽고 경제가 어렵게 된 것이 모두 젊은 사람들에게 너무 자유를 줬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끝이 났다.
무척 황당하게도, 아주머니 말씀을 간추려보면 이렇다. 젊은이들이 자꾸만 개성을 찾다보니 사회가 제멋대로 흘러간다는 것. 상식에 비추어 생각해봐도 다 함께 한길로 가면 더 빨리, 아무 문제없이 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파업이나 시위를 하는 것도 다 나쁜 일이라고 말한다. 이 얼마나 겁나는 말인가. 동두천까지 가는 동안 끊어지다 이어지다 하면서 아주머니와 이런 얘길 나누고 나서 강의 시간에 방금 있었던 일을 예로 들며 책 한 권을 사람들에게 소개했다. 윤구병 선생님이 지은 이다.
내가 이 책을 읽은 것은 아주 오래 전 일이고 2004년에 표지를 새로이 만들어 나왔을 때도 다시 구해서 읽었지만 여전히 큰 울림으로 남는 글이다. 내용은 윤구병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그리고 자기들끼리 주고받은 짧은 글들로 엮은 것인데, 그렇다고 반드시 아이들만 읽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어른들이 더 진지하게 읽어야 될 책이다.
책 제목에 모든 게 다 들어있다. 우리들은 때로 한 방향만 바라보게 만드는 애꿎은 가르침 때문에, 큰 권력이나 인기를 가진 사람이 된다거나 돈 많이 주는 직장에 취직해야 한다는 몇 가지 목표만 가장 뛰어난 것으로 여긴다. 그렇게 되어야만 이 사회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하면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며 자위할 때도 있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게 되었을 때를 상상해본다면 얼마나 끔찍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행동하고, 획일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있으며, 개성이 무시되고, 심지어 머리모양이나 옷 입는 것마저 똑같이 맞추도록 강요된 사회를, 우리는 미래세계를 그린 책이나 영화에서 흔히 본다. 개성이 없는 세상은 그런 모습과 다르지 않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우리는 늘 자연을 보면서 삶을 이해하고 그 안에서 배워야한다. 자연은 늘 똑같은 것 같지만 사실 저희들끼리 어울려 좋은 것을 배우고 닮아가기도 한다. 하지만 만물의 영장이라 으스대는 사람을 보고 배우지는 않는 것 같다. 쉽게 생각하면 다 똑같은 말을 하거나 같은 길로 몰려가는 게 행복을 위한 일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몇 사람만 잘 살도록 할 뿐이다. 모두 다 행복하려면 저마다 다 다른 것이 좋다. 한 나무에서 자라 가을바람에 흔들리다 떨어지는 갈색 잎사귀도 잘 보면 다 제각각으로 생긴 것처럼 행복은 저마다 다 다르기 때문에 소중하다. 윤구병 선생님의 글을 조용히 읽어본다.
"그러나 살아 있는 것은 하나도 똑같은 것이 없어. 하다못해 서울운동장의 축구장에 깔린 잔디 잎들마저 꼼꼼하게 들여다보면 하나도 꼭 같은 것은 없어. 우리 아파트 뒷산 솔숲의 소나무 잎사귀도 자세히 견주어 볼라치면 하나도 똑같은 것은 없어. 너희들도, 너희들 가운데 일란성 쌍둥이도 모두 다르지."
윤성근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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