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우리 경제의 올해와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불과 3개월 만에 또다시 대폭 하향 조정했다. 당초 '상저하고(上低下高ㆍ상반기 저조, 하반기 회복)'로 전망됐던 2012년 경기가 상반기보다 하반기가 더 나쁜 '상저하추'(하반기 추락)로 악화하고, 2013년에도 성장률이 3% 초반에 머무는 장기 저성장 국면에 진입했음을 인정한 것이다. 한은은 이런 판단에 따라 11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낮춰 경기 부양에 힘을 보탰지만, 경기가 조기에 회복될 가능성은 갈수록 옅어지고 있다.
악화일로 성장세
11일 한은이 발표한 '2012~2013년 경제전망'에 따르면 올해 우리 경제는 상반기 2.5%, 하반기 2.2% 성장에 그쳐 연간으로는 2.4% 성장에 머물 전망이다. 이는 올 7월 한은이 전망한 3.0%보다 0.6%포인트나 낮아진 수준이며 최근 잇따라 전망치를 내린 국내외 다른 연구기관들보다 더 낮은 수치다.
가장 큰 요인은 최근 급격히 나빠진 대외여건 때문. 신운 조사국장은 "유로존 위기 등의 여파로 2분기와 3분기 실적이 예상보다 많이 나빠졌다"고 설명했다. 실제 내수의 주축인 민간소비는 지난해 2.3% 증가에서 올해 1%대(1.7%)로 떨어졌고, 수출도 작년 10%대(10.5%) 성장에서 3%대(3.4%)로 급락할 전망이다.
내년에도 경기회복은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한은은 내년 성장 전망치를 3개월전(3.8%)보다 0.6%포인트나 낮은 3.2%로 예상했고, 민간소비(3.0%)와 수출(7.5%) 증가율도 평년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봤다. 우리 경제가 내년에도 잠재성장률(약 3.8%)을 밑도는 부진한 국면에서 빠져 나오진 못할 것이라는 의미다. 한은은 잠재와 실질 성장률간 차이인 국내총생산(GDP)갭률도 기존 예상치(내년 중 -0.2% 수준)보다 크게 확대(-1% 이상)될 걸로 예상하고 있다. 이는 그나마 유로존 위기와 미국의 재정적자 절감 충격(일명 재정절벽)이 지금보다 악화되지 않는다는 걸 전제로 하는 것이다. 한은은 "향후 경제 상황이 예상보다 호전될 가능성보다는 악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발표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 연구위원은 "다른 연구기관에 비해 경기 관련 세부 자료를 먼저 수집할 수 있는 한은이 성장 전망치를 대폭 낮췄다는 건 최근 경제여건이 알려진 것보다 더 안 좋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기준금리 20개월 만에 2%대로
한은은 이날 금융통화위원회를 열어 7월 이후 유지하던 연 3.0%의 기준금리를 2.75%로 0.25%포인트 내렸다. 기준금리가 2%대로 내려간 건 2011년 2월(2.75%) 이후 20개월 만이다.
한은 조치는 물가가 안정세를 유지하는 가운데 올 성장률이 2%대 초반까지 추락할 조짐을 보이자 유동성 공급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경제가 '저성장 쇼크'에 사로잡힌 만큼 기준금리 인하가 효과를 낼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실제로 금리 인하와 동시에 채권금리가 내리고, 주가와 원화가치는 강세를 띠는 게 정상인데도, 이날 금융시장은 둔감한 반응을 보였다.
코스피는 전날보다 15.13포인트 빠진 1,933.09에 마감됐고 3년물과 5년물 국고채 금리는 오히려 0.03%포인트씩 올랐다. 원ㆍ달러 환율(달러당 1,114.3원) 역시 0.3원 내리는 데 그쳤다. 시장 전문가들은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이미 각 지표에 모두 반영됐던데다, 오늘 인하로 당분간 추가 인하가 없을 것이란 전망에 오히려 지표들이 반대로 움직였다"며 "지금은 오히려 스페인의 신용등급 강등 같은 해외악재에 시장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양상"이라고 전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채지선기자 letmekno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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