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말이 통용돼 왔다. 특히 대선이나 총선을 앞둔 정치적 격변기에는 이 같은 말이 사실임을 실감할 수 있다.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세 후보가 각축을 벌이는 이번 대선도 예외는 아니다. 어제의 적이 동지가 되기도 하고, 오늘의 동지라도 내일엔 어떤 관계로 변할지 장담하기 어렵다. 정치와 권력의 무상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박근혜와 김무성, 선대에서부터 '굴곡진 인연'
김무성 선친 참의원 당선 후 5·16으로 물러나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와 새누리당의 총괄선대본부장으로 거론되는 김무성 전 의원의 굴곡진 인연은 선대(先代)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전 의원의 선친 김용주 전 전남방직 회장은 1960년 4ㆍ19 직후 참의원에 당선돼 민주당 원내총무를 지냈지만 5ㆍ16 쿠데타로 1년도 안 돼 의원 직에서 물러났다.
김 전 의원은 박 후보가 당 대표 시절이던 2005년 1월 사무총장에 기용되면서 본격적인 연을 맺었고 2007년 대선 후보 경선 땐 박 후보 캠프 조직총괄본부장을 맡았다. 친박계 의원들이 공천에서 대거 탈락했던 2008년 18대 총선에서 김 의원은 무소속 출마를 강행해 4선에 성공한 뒤 복당했다.
두 사람이 결정적으로 멀어진 건 2009년 5월 김 전 의원이 친이계 추대로 원내대표가 되려 할 때 박 후보가 반대하면서부터다. 이후 2010년 2월 김 전 의원이 세종시 수정안을 지지하면서 공식 결별했다. 박 후보는 "친박엔 좌장이 없다"면서 사실상 김 전 의원과 선을 그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회복된 건 올 3월. 박근혜 비대위 체제에서 공천을 못 받은 김 전 의원이 백의종군을 선언하면서 추가 이탈을 막는 데 기여하자 박 후보는 "부산 사나이다움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문재인과 송호창, 다정했던 민변 선후배 '결별'
문재인 "아프다" 발언에 송호창 "그말 듣고 눈물"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송호창 의원은 모두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출신이다. 송 의원은 같은 영남 출신으로 문 후보가 민변 내에서 각별히 아끼던 후배였다. 문 후보는 송 의원이 지난달 출간한 에세이집 에 추천사를 써주기도 했다.
송 의원은 4∙11 총선 때 민주당의 전략 공천을 받아 당선됐고 이 과정에서 문 후보도 음양으로 기여했다고 한다. 그러나 송 의원은 전날 탈당해 안철수 캠프에 합류했고, 문 후보에게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로 탈당 사실을 알렸다.
송 의원은 10일 라디오에 출연해 전날 문 후보가 자신의 탈당에 대해 "아프다"고 말한 것과 관련, "그 말을 듣고 저도 눈물이 났다"고 토로했다. 그는 "문 후보를 존경하고 오랫동안 민변 선배로 지켜보면서 진정성을 누구보다 잘 믿고 있는 사람이라 나도 가슴이 아프다"면서 "문 후보가 얼마나 실망할까 생각했고 그게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 길만이 문 후보와 민주당을 지키는 것"이라며 "그게 안 후보와 힘을 합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애틋한 감정의 일단은 나타냈지만 이제 두 사람은 야권 후보 단일화 전선에서 대치하는 관계가 됐다.
안대희와 한광옥, 한배를 탄 '검사와 피의자'
안대희 중수부장 시절 한광옥 비리 수사 악연
새누리당 안대희 정치쇄신특위 위원장과 선대위에서 중요 직책을 맡을 것으로 보이는 한광옥 전 민주당 상임고문은 한 때 검사와 피의자의 관계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던 한 전 고문은 2003년 9월 나라종금 퇴출을 막아달라는 청탁과 함께 금품 1억 1,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당시 안 위원장이 대검 중수부장으로서 한 전 고문 수사를 지휘했다.
이런 악연이 한 전 고문의 새누리당 영입 과정에서 재연됐다. 안 위원장은 "비리 인사와 함께 같은 자리에서 회의를 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며 사퇴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강수를 뒀다. 그러면서 야당에서 여당으로 옮긴 점도 정치 도의상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일견 타당성 있는 말이지만 안 위원장의 주장에도 모순점이 발견된다. 박근혜 후보 캠프의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도 안 위원장이 언급한 비리 연루 인사나 정치 철새 범주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도 동화은행 비리와 관련해 실형을 선고 받았고 민정당, 민주당, 새누리당을 오간 정치 이력을 갖고 있다. 한 전 고문은 "당시 사건과 관련해 허위 증언이 나타나 재심 청구 중에 있다"면서 입당 결정을 번복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박선숙과 김성식, 과거엔 적… 이제는 한둥지
박선숙 총선 때 "무소속 김성식 새누리 사람" 공격
안철수 후보 캠프의 박선숙, 김성식 공동선대본부장은 지난 18대 국회에서 각각 민주통합당과 새누리당 소속 의원 신분으로 상대 진영을 향해 공세를 퍼붓던 공격수들이다. 박 본부장은 지난 4ㆍ11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았을 때 지역별 판세를 브리핑하면서 ?본부장의 선거구인 서울 관악을 지역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한 적이 있다.
박 본부장은 민주당 유기홍 후보와 새누리당을 탈당한 무소속 김성식 후보가 접전 중이라고 설명하면서 김 후보를 겨냥해 "김성식 후보가 무소속이지만 결국 새누리당 사람"이라고 공격한 바 있다. 박 본부장은 또 "김성식 후보는 개혁파로 거론되지만 실제로는 국회 본회의에서 4대강 사업과 부자 감세 관련 법안 등에 찬성표를 던졌다"면서 목소리를 높여 비판했다. 김 의원도 대야 공격 과정에서 자주 선봉에 서면서 비판하는 목소리를 쏟아냈다.
그렇게 으르렁대던 두 사람이지만 박 본부장은 민주당을 탈당해 안 후보 캠프로 먼저 합류해 자리를 잡았고, 지난 총선 과정에서 새누리당을 탈당해 당적이 없던 김 본부장도 뒤늦게 '안철수호'에 승선했다. 하루아침에 적에서 동지 관계로 바뀐 것이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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