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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10월 11일] '친구와 개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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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10월 11일] '친구와 개새끼'

입력
2012.10.10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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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전문계고교에 근무하던 교사의 일이다. 어느 날 수업을 하러 교실에 들어갔더니 교실에 먼지가 자욱했다. 평소에 둘이 친하게 지내던 학생 둘이 싸움이 난 거였다. 평소에 학생들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수준의 싸움이 아니었다. 학생 하나는 코피를 흘리고 있고 다른 한 학생은 다리를 절뚝거리고 있었다. 피를 보고 난 다음이라 학생들은 보건실 가서 응급처치를 받고 교실로 돌아온 터였다. 학생들에게 이런 일이 있는데 수업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오늘 이 친구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우리가 같이 알아보고 생각해보자고 제안했다.

싸운 학생들에게 누가 먼저 때렸는지, 그리고 왜 때렸는지를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다소 엉뚱한 대답이 나왔다. "저 새끼가 나보고 개새끼라고 하잖아요."평소에 욕을 입에 달고 사는 학생들이었다. 조사를 빼고는 다 쌍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사실 그 중에서 '개새끼'는 욕 같지도 않은 그런 일상용어였다. 그러자 맞은 학생이 항변하듯이 말했다. "쌤, 그거 평소에 늘 하던 말이잖아요!" 그래서 교사가 그 학생의 말에 수긍하면서 때린 학생에게 그건 늘 쓰던 말인데 왜 오늘은 다르게 반응했냐고 물었더니 학생은 아침에 엄마와 크게 '한판'했다면서, 그래서 기분이 아주 안 좋았는데 친구라는 녀석이 옆에서 자꾸 "개새끼, 개새끼"하니까 그만 열 받아서 주먹이 나갔다고 말했다.

교사는 "아, 평소에는 괜찮았는데 오늘따라 화가 많이 났겠네. 그럼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한번 말해보지 그랬냐?"고 했더니 그 학생은 울컥하며 "쌤, 쌤이 시키는 대로 말로 했는데도 자꾸만 계속하잖아요."라며 말했다. 그러자 맞은 학생이 "쌤, 전 하지마라는데 그게 그냥 장난인 줄 알았어요!"라며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서 교사는 학생들에게 '말이란 그런 것'이라고 운을 뗐다. 평소대로 늘 쓰던 뜻 없는 말이라도 상대의 기분과 상태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기도 하는 것이 말이다. 하던 대로 하다가 주먹을 맞은 친구도 억울한 면이 있지만 때린 학생도 동무라는 녀석이 자기 기분을 헤아리고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이 "개새끼"라는 말보다 기분 더 나빴지 않았겠냐고 말했다.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다들 뭔가를 생각하는 눈치였다고 한다.

'말'에 대한 최고의 수업이었다. 학생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진지하게 듣고 뭔가를 깨달은 것은 이 이야기에 그들이 듣고 배울만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벤야민이라는 철학자가 말한 것처럼 '실제적 삶의 재료로 짜여진 조언', 삶에 대한 살아있는 조언, 즉 지혜가 담긴 수업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조언인가. 친구의 의미다. 철학자 김영민은 친구를 '듣지 않는 관계'라고 말한다. 친구란 '구태여 공들여 듣지 않아도 아는' 관계이다. '개새끼'가 보여주는 게 바로 이런 친구의 말이다. 평소에 늘 쓰던 말이었고 서로의 친분을 과시하는 말이었다. 바로 그런 언어였기 때문에 상대방을 헤아리고 듣는 것을 놓쳤다. 다 아는데 뭘 듣고 말고 할 것이 있는가. 프랑스 속담대로 한다면 우리는 아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듣지 않고 헤아리지 않았기 때문에 졸지에 친구는 '개새끼'가 된 것이다.

우리는 이처럼 듣지 않았으면서도 다 아는, 그래서 관계를 망치는 대화를 종종 본다. 당장 부모와 자식의 말다툼을 보라. 부모가 자식에게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면 자식은 곧 "엄마가 무슨 말 하는지를 잘 알거든. 그러니 내 말 들어봐"라며 자기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낸다. 그러면 곧 엄마도 자식의 말을 중간에 자르고 "나도 네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다 알거든. 그러니 엄마 말을 들어봐." 아무도 듣지 않고 서로 다 안다고 주장한다. 신기하다. 말하지도 않았는데 우린 어떻게 다 알고 있을까?

다 안다고 생각할 때, 그래서 우리가 듣지 않고 생각하기를 멈출 때 우리는 친구에서 '개새끼'가 된다. 친구와 개새끼는 한 끗 차이다.

엄기호 교육공동체 벗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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