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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게, 가을바다의 포말… 커피잔에서 감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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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게, 가을바다의 포말… 커피잔에서 감돌다

입력
2012.10.10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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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소란이 멎은 수평선이 발끝으로 포말을 민다. 나지막이 다가오는 바다. 모래 알갱이 사이로 꺼져 사라지는 파도 무늬가 쓸쓸하다. 차가워진 바람, 빨랫줄에 널린 한치가 추워 보인다. 삐걱. 녹슨 돌쩌귀에 붙은 나무문을 연다. 흐린 창으로 청옥빛 물결이 보이는 작은 카페. 알이 두꺼운 안경을 쓴 주인이 황금빛 크레마가 담긴 잔을 놓고 간다. 찻잔의 온기가 손을 어루만진다. 하얗게, 해변의 가을이 기화(氣化)한다. 흡_. 흑갈색의 안식이 오감을 통해 몸 속으로 들어와 퍼져간다.

오래 전, 가끔 무턱대고 커피 마시러 동해바다 가자는 친구가 있었다. 따라가지 않았다. 바닷가에서 마시는 에스프레소 한 모금은 분명 운치 있겠으나, 그러자고 두어 시간 차를 타는 건 우매한 짓 아닌가. 그런 뜻을 "미친놈" 세 글자에 담아 대답했지만 속으론 한번쯤 다른 일 말고 바다에 가보고 싶었다. 커피 마시러. 부드럽던 저녁바람이 쌀쌀해진 까닭일까, 지난 주말, 뜬금없이 그 '커피 마시러'가 동했다. 가을은 더러 대책 없는 청승도 면책되는 계절이다. 기름을 두둑이 넣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목적지는 강릉. 커피 좀 안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몇 해 전부터 커피 도시로 꼽히는 곳이다.

서울에서 두 시간 반, 최근 강릉항으로 이름이 바뀐 옛 안목항에 도착했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카페로 변해 있다. 왕년의 민박집 베란다는 빈티지 탁자가 놓인 카페 테라스가 됐고, 활어가 담겼던 횟집 수조 자리엔 로스팅 머신이 들어섰다. 멀리서 간판의 색깔만 봐도 구별할 수 있는 서울의 프랜차이즈 커피점들이 예외 없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저마다 자기 식대로 커피를 볶는 카페들에 묻혀 그 간판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여기 오면 진짜 커피 한잔 마시러 서울, 부산, 광주에서 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가히 커피 리퍼블릭(Coffee Republic)의 풍경. 강릉의 외진 어항이 전국적인 커피 명소로 둔갑한 연유가 궁금했다.

"안목은 강릉 사람들에게 땅끝 같은 마을이었어요. 어촌이던 시절엔 집이 50호나 됐을까. 버스도 하루 두세 번밖에 안 다니고. 남녀가 같이 여기까지 걸어왔다 돌아가면 자연스레 연인이 되곤 했죠."강릉문화재단 이종덕 사무국장의 설명에 따르면 안목의 커피 스토리는 1980년대로 거슬러 오른다.

경포해수욕장에만 관광객이 끓고 안목은 고기 잡는 사람 말곤 인적 없던 시절, 호젓한 장소를 원하는 강릉의 연인들이 하나 둘 안목에 찾아오기 시작했다. 안목은 시내에서 한 시간 이상을 걸어야 하는 거리다. 이 곳에 있는 자판기는 한참을 걸어온 연인들에게 인기를 끌었고, 자판기 커피 사연이 종종 라디오에 소개되면서 안목을 찾는 연인들도 불어났다. 덩달아 자판기도 늘어 한창 때는 이 외진 바닷가에 30여대가 줄지어 있었단다. 현재 카페 거리의 원형인 셈이다. 그 시절 자판기 주인들도 나름 미숫가루를 넣거나 참깨를 섞는 '바리스타 정신'을 발휘했다고.

강릉 사람들은 에 나오는 다도 유적 한송정(寒松亭)의 기록을 근거로 커피 사랑의 유래를 신라 시대까지 이어 붙이기도 한다. 그런 설은 흘려 듣더라도 강릉에 커피가 일찍 뿌리내린 것은 사실이다. 강릉 출신 예술가가 많아 근대 차 문화가 일찍 보급됐던 곳이다. 석유 곤로에 냄비로 커피를 끓이는 강릉식 사이폰 커피가 유행했던 게 1960, 70년대였다. 이 국장은 "경포해수욕장은 70, 80년대 최고의 신혼 여행지로 인기 높은 '핫 플레이스'였다"고 다른 이유를 덧붙였다. 윌카페, 유리집 등 LP판을 쌓아둔 경포의 유명 음악 다방에서 근사하게 커피를 마셔보는 것은 당시 신혼 여행의 필수 코스였다.

강릉항에서 해안 도로를 따라 경포대와 사천, 연곡 해수욕장을 지나 주문진항까지 올라갔다. 철 지난 바닷가는 북적거리는 인파 대신 커피 볶는 향이 그득했다. 인구 22만의 강릉에 커피집만 300개가 넘는다. 처음엔 머잖아 몇 집 안 남고 문을 닫을 거라고 예상됐는데 그 숫자는 지금도 꾸준히 늘고 있다. 고깃집에서 소주 마시고 2차로 카페를 찾는 것이 강릉의 회식 문화가 됐단다. 영진항에서 뭍 쪽으로 핸들을 꺾었다. 처음 찾아가는 이는 헤매기 십상일 듯한 우묵한 곳에 카페 보헤미안이 있다. 굽은 소나무 사이로 겨우 지붕이 보이는 숨어있는 집이다. 이 곳에 강릉의 커피 문화를 싹 틔워 올린 장본인이 머물고 있다.

"전 손님을 위해 커피를 추출하는 게 아닙니다. 커피란 무엇인가, 커피가 가진 힘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그런 것들이 제겐 더 중요한 문제죠."

일본식 핸드 드립의 최고수로 꼽히는 커피 장인 박이추(62)씨가 강릉에 터를 잡은 것은 12년 전이다. 일본에서 나고 자란 그는 1980년대 달달한 다방 커피밖에 없던 한국에 스페셜티 커피를 처음 소개한 1세대 바리스타다. 가게 이름처럼 보헤미안 기질이 강해 찾는 손님이 많아질 만하면 훌쩍 다른 곳으로 떠나곤 했던 박씨. "바다의 포용력"에 안겨 강릉에 정착했다.

이후 커피 아카데미를 열고 숱한 제자를 강릉에서 길러냈다. 그는 아직 모든 손님의 커피를 직접 내린다. 드립 포트를 든 그의 모습은 구도자 같았다. 박씨가 강릉에 올 무렵 서울의 특급 호텔에 원두를 대는 테라로사의 김용덕씨, 한국 최초로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한 커피커퍼의 김준영씨 등도 강릉으로 모여 들었다. 그렇게 '커피 리퍼블릭, 강릉'이 태동했다.

보헤미안을 나와 발 가는 대로 해변을 거닐었다. 인적 드문 바닷가에 전깃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창 밖으로 은은한 주홍 불빛이 새어 나오는 조그만 카페로 들어섰다. 사천횟집단지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작은 바위섬 앞. 기억이 맞다면 요란한 조개구이 네온 간판들이 휘황하던 자리다. 대책 없는 낭만이 정언명령과 같았던 대학생 시절, 정동진 해돋이 열차를 타고 강릉역에 내려 무턱대고 올라탔던 시내 버스의 종점. 커피 마스터가 블렌딩한 원두 커피 속에 쭈그리고 앉아 마셨던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맛의 끝자락이 환영처럼 떠올랐다. 추억인지 미련인지 미친놈처럼 혼잣말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야, 커피 마시러 동해바다 가자.

여행수첩

●강릉항(안목항), 경포지구, 사천해변, 연곡항, 주문진항, 정동진 등에 해변을 따라 카페 거리가 형성돼 있다. 강릉 시민들이 주로 찾는 카페는 시내 임영관(臨瀛館) 부근 경강로에 모여 있다. 강릉시 관광과 (033)640-5131 ●제 4회 강릉커피축제가 19~28일 강릉문화예술관과 강릉항 일대에서 열린다. 로스팅 및 바리스타 대회, 커피플라워 커피시화전 등 전시, 커피 용품 벼룩시장 등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다. 150여 곳의 강릉 지역 카페들도 자체 이벤트를 진행한다. 강릉문화재단 (033)647-6802. ●'2012 강릉 세계무형문화축전'이 19~28일 임영관과 단오문화관 등 도심에서 열린다. 우리 전통 문화 체험, 세계 먹거리 체험 등 세계 무형 문화 유산을 주제로 한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033)640-5586

강릉=글ㆍ사진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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