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동부경찰서 유치장 탈주범 사건은 발생 엿새 만인 지난 22일 탈주범 최갑복(50)씨가 붙잡히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사건의 전 과정에서 직무유기에 부실ㆍ무능한 수사력을 드러낸 데 이어, 사건 은폐 의혹까지 받고 있는 경찰 때문이다.
15㎝에 불과한 유치장 배식구 틈으로 피의자가 도주하는 희대의 사건이 발생하는 동안, 유치장 근무 경찰은 잠들어 있었다. 2차 방어선을 책임져야 할 상황실 근무자들은 사건 발생 2시간이 지났을 때까지도 최씨의 도주 사실 자체를 몰랐다.
이후 경찰의 대처 과정은 더 한심했다. 최씨는 15시간 이상 경찰서 주변을 돌며 옷가지와 신용카드, 자동차를 훔쳤다. 방향감각을 잃고 경찰서 앞을 다시 지나치기도 했다. 그가 훔친 차로 고속도로를 빠져나가고 편의점과 주유소에 들르는 동안 경찰은 버스터미널이나 역, 최씨의 연고지 주변만 맴돌았다. 검문검색의 기본조차 안돼 있다. "맨발로 도주했기 때문에 차를 훔쳐 도망갈 줄은 몰랐다"는 말도 안되는 해명에는 웃음마저 나온다.
경찰 순찰차량은 검문소 전방에서 최씨가 탄 도난 차량을 발견하고도 놓쳤다. 산으로 달아난 최씨는 하룻밤이 지난 뒤 밀양지역으로 넘어갔지만 경찰은 "청도 남산 주변 산세가 험해 벗어났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며 6일 동안 엉뚱한 곳만 뒤지고 있었다. 시민들의 신고로 최씨를 검거한 뒤 24일 중간 수사결과라고 발표하면서도, "최씨가 거짓말을 한다"며 도주 과정의 행적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도대체 경찰이 왜 존재하는가. 유치장 CCTV에 무슨 영상이 담겼길래 공개를 거부하면서 현장검증마저 실시하지 않는지, 의혹만 부추기는가. 그렇게 숨기고 있다가 검찰 수사 단계에서 더 큰 망신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무슨 일이든, 당장은 비난을 받더라도 사실을 사실대로 밝히는 것이 후환이 없는 법이다. 경찰이 이 모양이니 "누명을 벗기 위해 탈출했다"는 최씨의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주억거리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무능하고 음험한 경찰이 희대의 탈주범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사회부=정광진기자 kjche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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