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 대한 경외는 동북아시아 유목민들의 오랜 전통이다. 몽골의 게르는 기둥이 없다. 접었다 펼칠 수 있는 가는 나무를 가위 형태로 둘러친 벽이 그대로 구조가 된다. 그 위에 지붕을 덮을 수 있게 서까래를 올려 놓는다. 땅을 파고 기초를 놓는 작업이 없다. 그리고 이동을 할 때는 반드시 손상 된 땅을 원래대로 덮고 떠난다. 흉노, 선비, 투르크, 불가리아, 몽골, 헝가리 그리고 알타이지역에서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텡그리 신앙은 하늘의 신인 텡그리와 땅의 신인 에지 신앙을 기본 구조로 하고 있다. 그러니까 유목민들이 찾아낸 첫 번 째 신앙의 대상이 영원한 하늘과, 끝없이 펼쳐진 대지인 것이다. 농경민족인 한족의 경우에는 이런 대지모신에 대한 경외가 두드러지진 않는다. 그래서인지 중국건축은 땅에 대한 경외가 없다. 지극히 현세적인 중국인들은 땅을 파고 산을 만들고 물을 끌어 들이는데 있어 모든 것이 인간의 편리나 사회적 관계에 따라, 또는 개인의 의지에 의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일본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기초를 할 때 땅을 파고 주추를 심는다. 단지 습도가 높은 기후 조건에 의해 바닥을 땅위에서 띄워 놓는 고상식 주거의 형태가 차용 될 뿐이다.
차이는 기초를 놓을 때 땅을 파고 주초를 심느냐 아니냐,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신앙의 문제 뿐만이 아닌, 그 땅의 기후와 풍토가 작용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조선의 집은 이상하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여름에는 고온다습하다. 습기를 피할려고 땅에서 집을 들어 올리는 것도 같다. 그런데 일본집은 상식적이다. 땅에서 가구식구조를 짜 낮은 고상식주거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조선집은 같은 가구식 구조이면서도 땅에서 집을 띄우는 방법이 다르다. 땅위에 흙을 쌓아 원래의 땅보다 높은 터를 새로 만드는 것이다. '터를 잡는다'는 말은 여기에서 나왔다. 그냥 있는 대지를 잡는 것이 아니라 땅을 고르고, 그 위에 집이 앉을 자리를 높여서 다진다는 것이다. 이는 지극히 비상식적인 행위다. 상식적으로 보면 오랜 세월 비와 눈에 의해서 다져진 원래의 땅에 주초를 심는 것이 구조적으로 안정되고, 그 위에 나무 기둥을 세워 집을 땅에서 띄우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조선집은 굳이 원래의 땅위에 흙을 쌓아 다지는 힘든 방법을 택했다.
'에헤지경이요 에헤 지데미호/선천수 후천수는 에헤 지데미호/억만세계두 무궁한데 에헤 지데미호/건곤이 개벽후에 에헤지데미호/산천이 개탁할제 에헤 지데미호/산지조종은 곤륜산이오 에헤 지데미호/수지조종은 황하술세 에헤 지데미호'하는 '안택가', 혹은 '지경닦이'라고도 하는 집터 다지는 소리가 바로 그 고된 일을 할 때 부르는 노래다. 이 노래의 내용에도 역시 집터의 기원을 따지는 우리의 풍수적 관점이 잘 드러나 있다. 굳이 흙을 쌓아 집터를 돋우는 방식에는 온돌난방이라는 특수한 설비를 위한 계산도 있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땅에 대한 경외다. 동북아시아 유목민의 땅에 대한 경외(텡그리 신앙)를 간직하면서 한반도로 이주한 사람들이, 달라진 풍토와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바로 조선의 '터잡기'에 그대로 드러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조선의 터잡기는 절대 땅을 깎거나 파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있는 그대로의 땅만 이용했느냐면, 그건 또 아니다. 터잡기의 방법에는 높이는 것과 넓히는 것 두 가지가 다 사용됐다. 가파른 산비탈일 경우, 터가 모자라면 원래의 비탈에 축석을 쌓아 터를 넓혔다. 이렇게 쌓은 축석의 높이가 7~8m에 이르는 것도 있다. 어느 모로 보나 땅을 넓히는데에는 축석을 쌓고 거기에 다시 흙은 붇는 방법 보다는 비탈을 깎는 것이 편하다. 이 편리함을 제쳐 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풍토나 기후보다도 더 두려운 땅에 대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북방의 초원을 떠나 온지 수천 년 동안에도 대지모신에 대한 전통이 그대로 지켜져 왔다는 게 신기하고, 이 오랜 전통이 땅을 파헤치는 서구식 기초에 의해 무참히 사라져가는 게 아쉽다. 터에 대한 제사인 '텃고사'는 거의 유일하게 여성이 제주가 되는 제사이다. 여자의 마음은 여자가 더 잘 알기 때문일까?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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