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오후 2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 저축은행 등으로부터 거액을 수수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및 정치자금법 위반)로 구속기소된 이상득(77) 전 새누리당 의원에 대한 첫 공판을 보기 위해 100여명의 저축은행 피해자들이 일찍부터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전 의원이 푸른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나타나자 적막을 깨는 피해자들의 탄식이 흘러 나왔다.
법원은 이날 미리 방청권을 배부하고 방청객 몸수색을 하는 한편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10여명의 경위와 공익근무요원을 법정에 배치했다.
무거운 분위기를 뚫고 이원범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 부장판사는 당부의 말부터 했다. 이 부장판사는 "저축은행 사태 피해자들의 어려움을 잘 알고 있다"며 "재판에 대해 할 말이 있다면 서면으로 재판부에 의견을 전달해 달라"고 말했다. 이어 "심리 과정을 방해하면 오히려 (피해 회복에) 더 안 좋은 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며 "재판이 방해되면 부득이하게 제재할 수밖에 없으니 협조를 부탁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례적인 재판장의 당부의 말 이후 공판은 진행됐다. 검찰은 이 전 의원이 임석(50ㆍ구속기소) 솔로몬저축은행 회장과 김찬경(56ㆍ구속기소) 미래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청탁과 함께 총 6억원을 받은 혐의가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또 이 전 의원이 코오롱그룹으로부터 의원실 운영경비 명목으로 1억5,750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챙기는 등 죄질이 좋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 전 의원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바른의 박철 변호사는 "6선 의원이 처음 만난 저축은행 회장들에게서 돈을 받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며 "코오롱 측으로부터 받은 돈은 이 전 의원이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박 변호사는 대통령 측근 비리와 관련된 자신의 경험을 언급하며 "법정 증거만으로 유무죄가 정해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발언권을 얻은 이 전 의원은 "이 자리에 서게 돼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법정에서 모든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며 "저의 잘못된 점은 반성하고 국민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차분하게 말한 뒤 자리에 앉았다. 재판은 잠시 후 끝났고 이 전 의원은 아무 말 없이 구치소로 향했다.
하지만 저축은행 피해자들은 참았던 울분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한 50대 여성은 "여기서 날 죽여라"며 울먹였고, 또 다른 60대는 박 변호사를 향해 험한 말을 쏟아냈다. 한동안 울분을 토하던 피해자들은 법정 경위의 제지와 설득으로 겨우 법정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전 의원에 대한 다음 재판은 10월15일 열린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