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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와 함께 무너진 '가장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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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와 함께 무너진 '가장의 희망'

입력
2012.09.23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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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당 8만원. 전기기술자인 홍오준(55)씨가 건설현장에서 잡부로 일하며 받는 돈이다. 올해초 50대 중반에 처음 가정을 꾸린 홍씨는 늦장가 탓인지 가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왔다. 두 달 전 아내와 함께 맞이한 아들(22)이 교통사고를 내 어렵게 모은 수천만원이 날아갔다. 한 푼이 아쉬운 홍씨는 격주로 쉬는 토요일 다른 일거리를 찾아 나섰다.

22일 경기 파주시 적성면 두지리의 임진강 장남교 건설현장도 홍씨는 그렇게 찾아갔다. 하지만 장남교 현장은 이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오전 7시 30분쯤 상판 가설물에 콘크리트를 붓는 작업이 시작된 지 한 시간여 만에 상판이 15m 아래로 무너져 내리며 홍씨는 숨지고 말았다. 비보를 접한 동생(50)은 말을 잇지 못했다. "누구보다 가장 노릇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했는데 어떻게 처음 나간 현장에서…"

같은 현장에서 일하다 숨진 민봉현(50)씨도 일용직이었다. 중국을 오가며 컴퓨터 관련 사업을 벌였지만 경기불황으로 사업은 갈수록 기울었고, 견디다 못해 올해 초 사업을 접었다. 집안 가장으로 집에만 앉아 있을 수 없던 민씨는 약 4개월 전부터 인력사무소를 통해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했다. 기술이 없어 인력사무소에 수수료를 떼주고 나면 하루 7만~8만원 정도를 손에 쥘 수 있었다. 민씨 유족 중 한 명은 "집에 있으면 우울증에 걸릴까 봐 일을 권유했는데 내가 죽인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며 "기술도 없는 일용직들을 15m 높이에 올린 것은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임진강에 건설 중인 장남교 상판 가설물 55m가 무너지며 홍씨와 민씨가 숨지고 12명이 중상을 입었다. 숨진 두 명을 비롯해 부상자 중 5명은 하루 일당을 벌러 온 일용직들이었다.

23일 경찰 등에 따르면 파주시와 연천군을 잇는 장남교 상판 가설물 중 파주시쪽 55m가 22일 오전 8시50분쯤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무너진 곳이 강이 아닌 자갈밭이었고, 근로자들이 상판 잔해와 뒤엉켜 인명 피해가 커졌다.

2008년 2월 착공해 내년 4월 완공 예정인 장남교는 총 길이 539m에 폭 11m인 왕복 2차로 교량으로 현 공정률은 80%다. 경기도 도로사업소가 총 사업비 464억원을 들여 발주했고, ㈜태영건설 컨소시엄이 시공을 맡았다. 임진강 수백 미터 하류에 기존 장남교가 있지만 장마 때 수시로 물에 잠겨 이 교량이 새로 건설되면 기존 교량은 철거된다.

사고 지점은 이미 상판 시공이 끝난 구간과는 다른 공법이 적용됐다. 다른 구간은 상판 구조물을 사전 제작해 교량 축 방향으로 밀어내며 시공하는 ILM(Incremental Launching Method)공법이 사용됐지만 55m 구간은 가설물을 만든 뒤 현장에서 콘크리트를 직접 타설하는 방식이다. 상판 가설물은 전체 콘크리트 420톤 중 약 120톤을 부었을 때 무너졌다. 모든 구간을 ILM공법으로 시공할 수 있었지만 직접 타설은 군 요청사항이었다. 도 관계자는 "접경지역이라 유사시에 다리를 쉽게 끊기 위해 군 협의 과정에서 반영됐다"고 밝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사고원인 파악을 위해 이날 현장검증을 했다. 곧 구조안정성 실험과 외부충격 실험 등을 통해 설계가 적정했는지 검증할 예정이다. 경찰은 시공사 관계자 등을 상대로 부실공사 여부를 조사 중이다.

파주=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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