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서울의 금융회사 대표로 있는 친구를 만났다.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대학의 순위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최근 발표된 대학 평가에서 약 20위 근처라고 했더니 상당히 놀란다. 그렇게 높을 줄 몰랐다는 것이다. 나는 그 순위가 너무 낮아서 놀랐었는데 친구는 자기 예상보다 높아서 놀랐단다. 서울 사람들의 의식에서는 지방의 대학은 아마도 한참 먼 곳에 있고 수준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그도 지방 출신이고 필자와는 막역한 사이로 자주 만나 얘기를 하는 친구의 생각이 이 정도이니, 아마도 대부분 서울 사람들의 생각은 더 심할 것임에 틀림없다.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지방의 소위 거점 국립대학들은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10위권 근처로 평가되고 있었다. 하지만 학생과 교수 그리고 다른 자원들이 모두 서울 소재 대학들로 모이다 보니 이제는 서울의 웬만한 대학을 다 세고 나서 지방의 국립대학들이 순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대학에 순위를 매긴다는 것이 마땅치는 않지만, 우리나라에서 지방(혹은 지역)이라는 말이 차지하는 의미를 잘 보여주는 예가 될 것 같다. 한국의 지방대학 위상은 추락해 왔다. 아니 대학뿐 아니라 지방의 모든 것이 이런 상황일 것이다.
지방대학이 이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모든 자원이 서울을 중심으로 몰려 있기 때문에 자연히 학생들도 서울로 모이게 된다는 점이다. 서울과 수도권은 면적으로 보면 국토 전체 면적의 11.8%에 불과하지만 인구의 49%, 공공기관의 85%, 100대 기업 본사의 91%가 몰려 있다. 따라서 서울에 있는 대학을 졸업해야만 취업 등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지방대학을 나온 학생은 그곳에서 살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어 서울로 가야만 한다.
이러한 서울 집중 현상은 경제성장 과정에서 어떤 측면에서는 불가피한 점이 있었다. 부족한 자원, 낮은 생산능력을 한 군데에 집중해야 성장할 수 있다는 개발시대 논리가 바로 그것이다. 이에 따라 정부의 지원도 상당 부분 불균형하게 이루어졌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논리로 잘하는 곳을 지원하고 어려운 곳을 지원하지 않는 정책을 사용해왔다. 하지만 이는 정부의 본래적 역할과는 거리가 멀다. 시장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은 시장의 실패를 시정하여 전체 국민들에게 좋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여러 가지 조절을 하는 데 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잘 하는 곳을 집중적으로 밀어주는 것이 효율성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믿고, 그러한 방향으로 정책을 시행했다. 필자는 학교에 근무하기 때문에 교과부의 정책을 보면 바로 그러한 것을 쉽게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나라 대학생의 약 60%가 지방 소재 대학에 다니고 있고 교수도 약 60%가 지방에 근무하고 있다(교과부는 KAIST와 포항공대는 지방대학에 포함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부의 연구비 지원은 어떤가? 필자는 교과부 산하 국내 대표적 연구지원기관의 자료를 이용하여 연구비 지원을 분석한 바 있는데, 지방대학에 대한 연구비 지원은 전체의 35%에 불과했다. 물론, 연구비를 수주하는 것은 교수의 능력에 따른 것이므로 지방대학 교수들의 능력이 부족해서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실제로, 필자의 연구에서는 연구자 1인당 연구업적은 수도권 대학 교수들이 더 많았다. 그러나, '연구비 대비' 연구업적은 수도권이나 지방의 연구자가 별 차이가 없고 오히려 지방에서 약간 더 많다는 흥미로운 결과를 발견했다. 또 연구업적이나 학력 등 다른 측면이 모두 동일할 경우에도 단순히 수도권대학에 근무한다는 이유만으로 연구비 수주 확률이 약 30% 정도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총리실의 세종시 이전으로 세종시 행정수도 시대의 막이 올랐다. 모든 것이 서울로만 향하던 우리나라에서 상당한 방향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변화가 선택과 집중의 논리에서 벗어나 균형 쪽으로 이동하는 첫걸음이 되고, 대학교육에서도 지방의 대학들에 더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될 것을 희망한다.
오근엽 충남대 경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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