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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정신질환, 구멍뚫린 보건정책] (1) 의료 사각지대, 정신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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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정신질환, 구멍뚫린 보건정책] (1) 의료 사각지대, 정신병

입력
2012.09.2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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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료급여 환자 지원금 하루 2770원… 좋은 약 있어도 못써

우리나라 인구의 27.6%는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겪는다. 주요 정신질환 유병률은 2006년 12.6%에서 지난해 14.4%로 늘었다. 보건복지부가 서울대 의대에 의뢰한 2011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 보고서 결과다. 하지만 정신질환 관련 보건정책은 여전히 허점투성이인 데다 오해와 편견마저 부추긴다. 10월 10일 세계 정신건강의 날을 맞아 정신질환 정책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짚어 보는 기획시리즈를 4회에 걸쳐 싣는다.

누군가 자신에게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는 목소리가 계속 들려 괴로워하던 35세 한 남성이 조현병(정신분열병) 진단을 받고 입원했다. 항정신병약 할로페리돌 덕분에 환청과 망상 증상이 나아진다 싶더니 표정 변화와 팔다리 움직임이 둔해지는 부작용이 생겼다. 의료진은 자이프렉사로 약을 바꿨다. 그랬더니 부작용이 사라지면서 증상도 나빠지지 않았다. 하지만 생활형편이 어려워 정부가 치료비를 지원해주는 의료급여 대상자인 이 남성은 자이프렉사를 계속 쓸 수 없었다. 정부 보조금에 비해 약값이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의료진은 자이프렉사 사용을 중단하고 다시 예전 약을 쓰기 시작했다.

의료급여 정신질환자 중엔 이처럼 더 잘 듣는 약을 알면서도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다른 병과 달리 유독 정신질환에는 정부가 지원하는 치료비에 상한선이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명백한 차별이라고 지적한다.

약값 4,977원 vs 지원금 2,770원

정부 보조금이 정해져 있는 치료는 만성신부전증의 혈액투석과 정신질환뿐이다. 의료급여 만성신부전증 환자에게 혈액투석 치료를 하면 의사는 정부에서 1회당 13만6,000원(수가)을 받는다. 보험료를 내는 건강보험 환자 치료 수가의 90~95%다. 그나마 차이가 적다. 그런데 의료급여 정신질환자 치료 수가는 하루 진료비와 약값을 포함해 2,770원이다. 건강보험 환자 치료수가의 60~75%에 불과하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이 같은 정액제 때문에 의료급여 정신질환 환자가 질 낮은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할로페리돌을 비롯해 1990년대 중반 이전에 나온 전통적인 항정신병약은 단가가 대부분 100원 안팎으로 싸다. 그러나 그 이후 나온 최신 약은 10배 이상 비싸다. 예를 들어 자이프렉사의 단가는 4,977원. 의료급여 정신질환자가 하루에 쓸 수 있는 진료비를 훌쩍 넘는다.

정신질환 치료 수가를 이렇게 낮은 금액의 정액제로 묶어놓은 이유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료급여 환자들 상태가 대부분 정형화해 있고 치료 난이도가 크게 높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정도 지원이면 "기본적인 진료"는 받을 수 있고, 싼 전통 약과 비싼 최신 약의 효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전문의들은 정신과 의료현장을 모르는 이야기라며 일축한다. 황태연 용인정신병원 지역정신보건부장은 "정신질환 증상은 환자마다 워낙 천차만별이라 맞춤치료가 필수"라며 "외국에선 정신과는 정액제를 적용하지 못하도록 한 나라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또 당장 증상이 개선되는 정도는 이 약 쓰나 저 약 쓰나 비슷해 보일 수 있지만, 인체기능이나 부작용 측면에선 장기적으로 최신 약이 훨씬 낫다는 게 전문의들의 견해다.

의료 급여 환자의 의료서비스 저하

정신과에선 전문의가 환자와의 상담으로 병의 원인이나 증상을 파악하는 경우가 많다. 의사가 상담진료로 받는 수가는 얼마나 오랫동안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병원급 의료기관에선 상담시간이 15분 이하(지지요법)면 수가가 1만220원, 15~45분(집중요법)이면 1만3,000~1만4,000원, 45분 이상(심층요법)이면 1만1,800원이다. 의원급은 약간 적다.

그런데 이는 일반 건강보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수가다. 의료급여 환자는 상담 역시 정액인 2,770원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옛날 약을 쓰든 최신 약을 쓰든, 상담을 짧게 하든 길게 하든 병원이 얻는 수입은 같다. 병원 입장에선 의료급여 환자에게 비싼 약이나 오랜 상담을 계속해서 제공하다 보면 경영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결국 의료급여 환자가 건강보험 환자보다 질 낮은 치료를 받게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가 2009년 내놓은 '정신장애인 인권 보호와 증진을 위한 국가보고서'에 따르면 건강보험 환자에 비해 의료급여 환자가 받는 상담이나 재활 치료 횟수와 시간이 현저하게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치매도 진료과 따라 지원 차등

뇌에 문제가 생겨 신체적, 정신적 이상증상이 나타나는 알츠하이머병(치매) 역시 정신질환의 하나다. 치매를 보는 진료과는 신경과와 정신건강의학과. 그런데 의료보호 치매 환자는 대부분 신경과로 간다. 신경과에선 환자가 의료보호 대상자라도 의사가 처방하는 약이나 검사마다 수가가 나오기 때문에 건강보험 환자와 같은 수준으로 치료받을 수 있다. 반면 정신과에선 치매 역시 정액 범위 안에서 치료받아야 한다. 권준수 ?顚類늉?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치매 환자에게 필수인 인지행동 치료는 신경과가 아니라 정신과 영역"이라며 "같은 병인데 진료과가 다르다고 치료에 제한을 받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이 2008년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과 관련 의료기관이나 요양시설에 입원(입소)한 환자의 69.4%가 의료급여 대상자고, 건강보험 환자는 27.3%다. 결국 건강보험 환자에게처럼 상담료나 약값 등을 의사가 처방하는 만큼 지원해주다 보면 정부가 재정을 감당하기 어려워져 치료에 제한을 뒀다는 게 의료계의 시각이다.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제대로 주장하지 못하는 정신질환 환자들의 약점을 정부가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당장 어렵다면 단계적으로라도 이 같은 불평등한 치료 제한을 없애야 한다는 게 의료계의 중론이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 진료 한번만 받아도 보험 퇴짜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한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간혹 민간보험회사 직원들을 만나게 된다. 연구실로 찾아와 그가 진료해준 환자의 병명이나 상태 등을 묻거나 진료기록을 요청하기도 한다. 그는 "이런 경우 열에 아홉은 보험서비스를 이용하려는 환자가 불이익을 받거나 가입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고 귀띔했다.

상법 제732조는 '심신상실자 또는 심신박약자의 사망을 보험사고로 한 보험계약은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9년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많은 보험회사가 심신상실자, 심신박약자란 용어를 광범위하게 해석해 정신과 진료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보험 가입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처럼 법에 정신병자, 정신미약자, 정신이상자 등 정신질환을 연상시키는 유사 단어들이 많은 데다 정신질환 개념도 광범위해 부정적인 인식을 확대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정신보건법 제3조는 정신질환자를 '정신병ㆍ인격장애ㆍ알코올 및 약물중독 기타 비정신병적정신장애를 가진 자'로 정의한다. 병의 유형이나 증상의 정도에 관계없이 정신질환 하면 치료가 어려운 중증으로 여겨질 수 있다.

일시적이거나 가벼운 증상이 있어 정신과 상담을 받으면 건강보험 급여를 청구할 때 정신질환 병명이 표시된다. 약을 먹거나 입원하지 않았어도 정신과에 갔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중증 정신질환자와 비슷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정신과에 가길 꺼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보건복지부 조사 결과 정신질환 경험자 중 전문가에게 상담이나 치료를 받은 비율은 15.3%에 불과했다. 미국(39.2%)이나 호주(34.9%), 뉴질랜드(38.9%)보다 크게 낮다.

고려대 구로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조숙행 교수는 "미미한 정신질환 증상은 감기처럼 치료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대돼야 한다"며 "비의료인들이 접할 수 있는 정신의학 정보를 늘리는 것도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 입원 환자 57%가 조현병

우리나라에서 의료기관이나 요양시설에 입원(입소)한 정신질환자가 가장 많이 앓는 병은 57.2%로 조현병이다. 두 번째로 많은 알코올중독(21.2%)의 2배가 훌쩍 넘는다. 2010년 보건복지부 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단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3만2,740명이던 조현병 입원 환자는 2010년 4만2,027명으로 매년 증가 추세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은 조현병 환자라도 일찍부터 치료를 제대로 받으면 얼마든지 정상적인 일상생활이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사회로 되돌아가지 못한 채 병원에 의지해 지내는 환자가 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유독 조현병에 대한 오해가 크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조현병은 정신분열병으로 불렸다. 1900년대 초반 환청, 망상 같은 주요 증상이 정신이 갈라졌기 때문에 생긴다는 뜻에서 붙은 영문이름을 직역해 치료가 불가능한 병, 정신이 분리된 병이라는 혐오감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조현병으로 개명하는 내용을 담은 약사법 개정안이 뒤늦게 지난해 국회에서 통과됐다. '조현(調絃)'은 '현악기의 줄을 고르다'란 뜻으로 줄이 잘 맞지 않으면 제대로 연주할 수 없듯 신경계에 이상이 생겨 행동이나 마음에 문제가 생기는 병이란 의미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이름이다.

과거엔 치료가 어려웠지만 요즘은 약이 좋아져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채 생활할 수 있다. 매일 약 먹는 게 쉽지 않은 환자를 위해 한 달에 한번씩 주사만 맞으면 되는 치료법도 나왔다. 그런데 많은 환자들이 쓰지 못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까다로운 규정 때문이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아 이 주사제를 맞을 수 있는 건 증상이 2번 이상 재발하고 약물순응도(약을 잘 챙겨먹는 정도)가 떨어진 환자에 한해서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약물순응도란 기준이 모호해 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도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규정이 있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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