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7월 말 현재 3,144억달러로 집계된 우리나라 외환보유액 중에는 유사시 즉시 동원이 불가능한 허수 통계치가 일부 포함됐다는 사실을 국제통화기금(IMF) 측에 인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외환당국이 보유외환의 구조적 문제를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은 극히 이례적으로, 국제신용평가회사의 신용등급 판단 과정에서 당국의 입지 축소 등 악영향이 우려된다.
21일 기획재정부와 IMF에 따르면 두 기관은 최근 한국 경제상황과 거시정책의 타당성 등과 관련한 연례협의를 벌였는데, IMF의 원화절상 요구를 반박하는 과정에서 재정부 당국자가 보유외환 구조의 문제점을 공개했다.
IMF가 홈페이지를 통해 밝힌 두 기관 사이의 협의내용(Staff Report)에 따르면 IMF는 "원화가 실질실효환율 기준으로 7%가량 저평가됐으며, 외환보유액도 IMF가 설정한 적정 기준의 130%에 달한다"며 "외환보유액을 더 이상 확충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IMF의 이번 지적은 '확충 필요성이 확실하지 않다'는 2011년 협의 때보다 훨씬 단정적이고 강력한 것으로, IMF가 대주주인 미국(지분율 17.41%)이나 일본(6.46%ㆍ한국은 1.8%)을 대신해 우회적으로 원화절상(환율 인하) 압박을 가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재정부는 IMF의 지적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외환보유 구조의 문제를 인정했다. IMF 자료에 따르면 재정부 당국자는 "올 들어 원ㆍ달러 환율이 이미 3%가량 인하됐다"고 소개한 뒤 "국내 은행의 해외차입을 돕기 위해 지원된 '선도(先導ㆍForward) 포지션'은 (곧바로 현금화가 안되므로) 사실상 외환보유액에서 제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당국자는 또 "한국은행이 (금융위기 때) 시중은행에 제공한 뒤 회수하지 않고 있는 외환보유액도 위기 때 즉시 현금화가 될 수 없다"고 실토했다. 장부상에는 외환보유액으로 분류돼 있어도, 시중은행이나 제3자에게 빌려 준 부분은 사실상 '허수'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우리나라 보유외환의 통화별ㆍ만기별 구성에 문제가 있다는 비공식 추정은 있었으나, 당국자가 공개적으로 문제를 시인한 것은 이례적이고 신중치 못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외환보유액 통계의 신뢰성이 떨어지면 국제금융계에서 한국 정부와 관련 기관의 협상력이 그만큼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 외환보유액
교환성이 있고 유동성ㆍ시장성이 높은 자산으로, 통화당국인 중앙은행과 정부가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대외외화 금융자산을 뜻한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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