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론 수준 정책… 짜깁기 논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정책은 지난 7월에 발간한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 에 담긴 내용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다. 안 후보는 지난 1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할 때 정치개혁의지를 밝히고 정책 방향만 제시했을 뿐 구체적 정책은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선거 과정에서 내놓겠다"며 답지를 비워놓았다. 안철수의>
그는 대담집에서 정의ㆍ복지ㆍ평화란 세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전반적 문제를 짚은 뒤 큰 틀의 개혁 과제를 제시했다. 예컨대 공정한 시장경쟁을 위해 경제범죄에 대한 강도 높은 처벌을 얘기하거나 대기업 체제를 주주 중심에서 노동자 및 지역 주민 등 이해관계자 중심으로 전환해 사회적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를 구현할 수 있는 구체적 정책 수단이나 재정확보 방안 등을 세부적으로 검토해서 내놓은 것은 없다.
책에서 제시된 대략의 정책 방향은 복지 확대,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조세정의 실현, 일자리 창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 사법개혁 등이다. 이는 우리 사회의 기본 화두라는 점에서 여야 정치권의 의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
대선 후보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 같은 과제를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 정책 제시이다. 하지만 안 후보가 일부 언급한 정책 각론은 그간 여야에서 제시된 내용을 자신의 시각에서 정리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를테면 국공립 보육시설 확대, 아동수당제 도입,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최저임금 현실화, 반값 등록금 단계적 시행, 전세보증금 상한제 실시, 공공임대주택 강화, 고위공직자 비리수사처 신설 등 상당수가 민주통합당이 4ㆍ11 총선 당시 내놓은 공약과 비슷하다. 따라서 민주당 공약이 재정 확보 방안 없는 백화점식 보여주기 공약이란 지적을 받았던 것과 유사한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안 후보는 재벌개혁 방안과 관련, 순환출자는 유예기간을 준 뒤 철폐하고 출자총액제한제에 대해서는 좀더 일관성이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민주당과는 다소 다른 입장을 보였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안 후보 브랜드 정책'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정치인으로서 그 정도면 균형 있게 잘 정리한 느낌이지만 아직 원론적 수준에 그치고 있다"며 "이를 현실에서 제도화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안 후보는 출마 선언문에서도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성장동력과 결합하는 경제 혁신을 이뤄야 한다"며 총론적 입장만 제시했다. 다만 안 후보가 경제 성장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책에서 제시된 노선보다는 다소 우클릭하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책에서 눈에 띄는 것은 안 후보가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보편적 증세를 거론했다는 점이다. 복지 지출을 늘리기 위해선 현실적으로 증세가 불가피할 뿐 아니라 "소액이더라도 돈을 내고 참여하게 되면 주인의식을 고취시켜 만족도와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이는 민주당이 '부자 증세'를 주장하는 것과 뚜렷이 대비된다. 보편적 증세는 그러나 자칫하면 유권자들의 반발을 부를 수 있어서 안 후보가 실제 선거 과정에서 이를 구체화시켜 내놓을지는 미지수다.
안 후보 캠프 관계자는 "책에서 정책 철학과 방향만 제시했으므로 구체적 정책은 선거 과정에서 제시할 것"이라며 "안 후보는 비정규직 문제, 취업난, 양극화 등을 해결하기 위해 경제 분야 공약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치권 관계자들은 "안 후보는 중도층과 보수층을 모두 잡기 위해 좋은 내용만 짜깁기하는 식의 정책 방향만 제시했다"며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면서 실현 가능한 정책을 제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 경제 멘토 이헌재 '구시대 인물' 논란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정책 밑그림을 그릴 '안철수의 사람들' 정점엔 김대중ㆍ노무현정부에서 경제 수장을 지낸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있다. 안 후보의 '경제 멘토'인 이 전 부총리는 정통 경제관료 출신으로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위기관리 능력을 평가 받았다. 반면 '관치금융의 화신''신용카드 대란 주범' '빈부격차를 심화시킨 구조조정 전도사''노무현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책임자' 등을 거론하며 안 후보가 내세운 경제정책 방향과 동떨어진 인물이라는 혹평도 적지 않다. 안 후보는 출마 선언 때 "노무현 정부의 큰 과(過)는 재벌의 경제집중, 빈부격차 심화"라고 주장한 데 이어 그 다음날에는 "(김대중 정부에서) 경제위기는 넘어섰지만 양극화는 심화됐다"고 평가했다. 안 후보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거론하면서 당시 경제부총리를 지낸 인사를 중용하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처사"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진보진영 일부 학자들은'모피아'(MOFIAㆍ재무부와 마피아 합성어) 대부인 이 전 부총리가 양극화 심화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안 후보가 '새로운 체제'를 이야기하면서 '낡은 체제'인사를 통해 해법을 찾으려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이 전 부총리의 개인적 처신도 안 후보가 내세우는 새로운 정치와 부합하지 않는 다는 지적이 있다. 이 전 부총리가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5년 부총리직에서 물러나게 된 것은 '땅 투기 의혹'제기 때문이었다. 당시 이 전 부총리가 경기도 광주시 임야 등을 팔아 58억원대 소득을 올린 것을 두고 부인의 위장전입, 내부자 정보 이용 의혹 등이 제기됐다. 하나같이 안 후보가 구체제의 문제점으로 지적했던 의혹들이다. 사퇴 이후 이 전 부총리가 법무법인 김앤장 고문으로 간 것에 대해서도 "정부의 규제 부서에서 전관예우 등 미래의 기회를 보는 건 사실상 부패행위"라는 안 후보의 평소 언급과 배치된다. 이 전 부총리는 국회 청문회에서도 상호신용금고에서 '저축은행'으로 명칭을 변경한 조치를 두고서도 "난 단지 상호 변경이 필요하다는 원칙만 제시했을 뿐"이라는 회피성 발언을 내놓았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나 김호기 연세대 교수 등이 안 후보의 정책 자문역으로 거론되는 것도 구체제의 단골 논란거리였던 '폴리페서'(정치 지향 교수) 논란을 증폭시킬 수 있다.
장재용기자 jyjang@hk.co.kr
■ 보수·진보 모두 의식 급진 대북평화 지양 "모호한 햇볕" 평가도
안철수 후보는 19일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는 안보와 균형을 맞출 때 실현 가능하다"고 밝혔다. 보수층과 중도층 표심을 모두 의식한 외교안보 정책 기조를 밝힌 것이다. 하지만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한 외교안보 정책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많다.
일반 학자나 시민들이 말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다. 그는 여야 정치권의 대북정책을 동시에 비판하는 듯하지만 '안철수 브랜드 외교안보 정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안 후보의 대북 정책은 모호한 햇볕정책을 떠올리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안 후보의 최근 언급은 북한의 핵 포기 등 안보 환경의 변화가 없을 경우 급진적 대북 평화정책을 지양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평소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로 자신을 규정한 것이나 지난 7월 발간한 대담집 <안철수의 생각> 에서 "안보가 불안하고 평화가 정착되지 못하면 복지국가도, 정의도 불가능하다"고 말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아직까지 안 후보 캠프에서 외교안보 분야 정책을 다룰 전문가도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다. 안 후보는 지난해 말 이후 문정인 연세대 교수, 김근식 경남대 교수 등 일부 전문가들과 함께 한반도 정세와 북한 문제 등에 대해 공부했으나 그것은 그야말로 '학습'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철수의>
그는 책에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은 남북 긴장완화의 성과를 거둔 반면 퍼주기 논란 등 남남갈등을 유발했고, 투명성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현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해서도 "채찍만 써서 남북갈등이 심화됐다"며 "기계적 상호주의를 고수한 것은 북한이 곧 무너질 것이란 붕괴 시나리오에 따른 것"이라고 비판했다. 안 후보는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 남북대화 및 경제협력 재개, 금강산∙개성공단 관광 재개, 개성공단과 같은 협력 모델 확대를 주장하고 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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