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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지식인 없었다면 혁명도, 반혁명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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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지식인 없었다면 혁명도, 반혁명도 없었다

입력
2012.09.2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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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50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시인 김수영이 자기반성하듯 그려내는 것은 거대한 권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소시민 지식인의 초라한 자화상이다.

지식인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되묻는 책들이 나란히 출간됐다. <지식인의 표상> (에드워드 사이드 지음ㆍ마티 발행) <지식인의 책임> (토니 주트ㆍ오월의봄) <지식인> (이성재ㆍ책세상).

우선 눈길이 가는 책은 사이드의 1993년 BBC 강연을 묶은 <지식인의 표상> 이다. 역작 <오리엔탈리즘> 으로 잘 알려진 이 팔레스타인 출신 비교문학자는 오랫동안 미국에서 교수생활을 했다. 그런 이방인, 주변인이라는 '존재'가 이 책을 포함해 일련의 저서들에서 그가 비판과 저항으로 연마된 '사고'를 펼칠 수 있는 샘인지도 모른다.

사이드는 '현대사에서 지식인들이 없었다면 중요한 혁명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반대로 중요 반혁명도 없었을 것'이라며 '상황에 따라 몸을 사리고, 예민한 사안에 대해 침묵을 지키며, 애국주의에 입각하여 엄포를 놓거나 회고적으로 자신을 극화하여 변절을 일삼는 것만큼 지식인의 공적인 모습을 더럽히는 일은 없다'고 강조한다.

사이드가 그려내는 지식인상의 키워드는 '아마추어주의'다. 여기서 '아마추어'는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이윤이나 보상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전문성에 묶이는 것을 거부'하며 '직업적 제약을 극복하여 이념과 가치를 살피면서 여러 경계와 장벽을 가로지르는 연결점을 만들어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일'에 애정과 관심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사이드에게 지식인은 갈등조정자나 합의도출자가 아니라 '손쉬운 공식이나 미리 만들어진 진부한 생각들 혹은 권력이나 관습이 으레 말하고 행하는 것들을 거부하는 감각에 실존을 거는 존재'이다.

그의 지식인론을 흘려 듣기 어려운 것은 세간의 어설픈 의심과는 반대로 이슬람을 향해서도 비판의 화살을 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랍 이슬람세계에서 '이슬람은 다수파 종교일 뿐'이라며 그는 '다양한 이슬람교의 해석 가능성에 대해서는 물론이요 모든 불만과 차별적 목소리를 균등하게 만들면서 "이슬람이 곧 길이다"라고 단순하게 말하는 것은 지식인의 역할이 아니다'고 지적한다.

<포스트워 1945~2005> 등으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역사학자 토니 주트는 <지식인의 책임> 에서 프랑스 사회당을 대표하는 정치인 레옹 블룸과 작가 알베르 카뮈, 철학자 레몽 아롱이 다수의 편에 서지 않고 시대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했던 모습을 재조명했다. 저자는 그들이 도덕적 용기가 있었고, 다양한 공적 영역에서 지성적ㆍ도덕적 혹은 정치적 책임을 무시하거나 포기하는 경향에 대해 저항했다는 점을 꼽아 지식인의 모델로 제시했다.

책세상의 개념사 시리즈로 나온 <지식인> 은 지식인이란 어떤 존재인지를 개관하기에 적당하다. 책에서 지식인론을 9가지 유형으로 나눈 대목이 눈길을 끈다. 만하임은 어떤 집단에도 매이지 않는 갈등의 중재자 역할을 하는 '자유 부동하는 지식인', 지식인의 기능적인 성격을 중시한 그람시는 '유기적 지식인'을 말했다. 억압당하는 자의 편에 설 것을 강조하며 사르트르는 '보편적 지식인'을, 전문성을 눈여겨본 푸코는 '특수적 지식인'을, 진실 추구를 강조한 촘스키는 '진실의 지식인'을 이야기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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