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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5. 하늘과 땅과 사람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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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연재소설 여울물소리] 5. 하늘과 땅과 사람 <123>

입력
2012.09.18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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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길은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신통에 물었다.

혹시 전에 대원위 대감 댁의 호종무사였던 허민이란 이를 뵌 적이 있습니까?

아, 직접 뵌 적은 없으나 서 지사님은 군란 때 얘기를 꺼내면 늘 말씀하셨습니다.

그럴 거요. 서 지사와 나와 김만복 별장이 함께 대원위 대감을 뵙고 하소를 올렸으니까. 허민 무장은 지금 운현궁 호종감을 맡고 계시니 무슨 수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유영길은 형이 처형된 뒤에 강원도로 피신했다가 중국에 억류되었던 대원군이 돌아온 뒤에야 한양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고, 같은 무렵에 예산으로 내려가 남연군 묘의 참봉을 하며 은거했던 허민도 운현궁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다. 유영길이 가족을 수습하고 이나마 하급 관직을 얻게 된 것도 허민의 도움이 있었던 때문이라 하였다. 이신통과 옥사장 유영길은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우선 내일은 당장에 전옥서로 찾아가 아저씨 접견을 하고 나서 운현궁에 통자해 볼까 합니다.

접견이야 아무 때나 할 수 있지만 운현궁에는 나하구 함께 가야 할 거요.

이튿날 늦은 오전에 신통은 객점 경주인과 함께 서린 전옥서를 찾아갔고 신통은 이전에 박도희를 만나러 드나들던 기억이 새로웠다. 경주인은 삼층 찬합에 여러 가지 밑반찬을 해왔고 따로 옥전거리의 상밥집에서 주문을 했다. 그들이 옥리에게 알리자 미리 알고 있었는지 순순히 쪽문을 열어주었고 이전에 박도희를 원옥에서 불러내어 음식을 먹이던 상방 마루에서 서일수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마주 보이는 곳은 죄수들의 식사처요 높은 담장이 가로막혔는데 또한 쪽문이 보였다. 이쪽의 바깥을 가로막은 담에 붙여서 지은 지붕만 있는 칸막이들은 가족들이 죄수들에게 밥을 차입해주는 곳이었다. 불려나오기 시작한 죄수들이 칸막이마다 몰려서자 옥리들이 바깥으로 낸 창문을 막아놓았던 널판자 덧문의 고리를 벗겨내고 활짝 열었다. 서로 가족의 이름을 부르며 찾다가 식구들과 죄수가 만나면 보퉁이에 싸온 떡이며 찬이나 장에 곁들인 주먹밥 등속을 들이밀었고 옥리들은 조용하라고 으름장을 올리며 꾸짖곤 했다. 신통과 경주인이 마루에 앉아 기다리려니 서일수가 옥리의 부축을 받으며 쪽문으로 나왔다. 신통이 달려들어 서일수를 껴안았다.

아저씨, 이게 무슨 고생이우.

서일수는 비칠거렸다가 신통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주며 슬그머니 밀어내고는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싱긋 웃었다.

자네 신수가 훤하구먼.

경주인은 며칠에 한 번씩 만나던 처지라 그냥 고개를 끄떡했을 뿐이었다. 그들의 뒷전에는 전옥 아래 두번째 책임자인 옥사장 유영길이 따라왔다. 방에 들어가 앉자 신통은 여러 이야기를 자세히 하지는 않았고 그냥 이렇게 얘기했다.

모두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스승님께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저씨를 구명해내야 한다고 이르셨지요.

고마운 일일세.

옥사장은 곁에 옥리가 있어서 자세한 얘기는 늘어놓지 않고 한마디 거들었다.

조만간 좋은 일이 있지 않겠소?

옥전거리 밥집의 중노미가 채반에 담은 상밥을 머리에 이고 들어와 펼쳐놓았고 서일수는 거위병에 담긴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밥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나서 그는 경주인을 돌아보며 한마디했다.

우리 칸에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는데 떡이나 사서 좀 들여주고 가우.

허어, 매번 그놈들까지 먹이려는 구려.

옥사장이 투덜거리자 서일수가 말했다.

죽을 때 죽더라도 굶주림이야 어찌하겠소. 내가 바라지 받으러 나올 때마다 은근히 기대를 하고 있는데.

염려 마오. 우리가 나가다 떡집에 차입하라고 당부하리다.

접견을 끝내고 경주인은 애오개 객점으로 돌아갔고 이신통은 옥사장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함께 부근에서 요기를 했다. 두 사람은 종루 거리를 올라가 철물교에서 관인방 쪽으로 올라갔고 운현궁에 이르렀다. 가끔 들렀던지 유영길이 익숙하게 대문간에서 하인에게 일렀고 두 사람은 허술청으로 안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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