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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안철수의 오늘

입력
2012.09.18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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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후보는 대선에서 '지역주의 청산'라는 어젠다를 승부수로 띄웠다. 지역주의 벽을 넘겠다며 부산에 출마해 세 번이나 떨어졌던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행정수도 충청권 이전 공약은 선거 내내 이슈를 주도했다. 선거 판을 자신의 프레임으로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이명박 후보는 '경제 대통령'을 내세웠다. 대기업 CEO 출신이라는 간판만큼 확실한 보증수표는 없었다. BBK 같은 도덕적 검증은 경제와 성장 앞에 낙엽처럼 스러졌다. 참여정부의 경제 무능을 심판하는 성격을 띤 선거인지라 완벽하게 이슈를 독점할 수 있었다.

무상급식은 야당이 이슈를 만들어 선거를 장악한 대표적 사례다. 2010년 지방선거와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뜨겁게 달궜다. 야당을 대안으로 인정하고 지지하는 근거가 됐을 뿐 아니라 정치에 무관심하고 소외된 다수를 돌려세우는 순기능까지 했다.

이번 대선의 이슈는 무엇인가. 아직 선거 판을 달굴 뚜렷한 이슈나 어젠다가 보이지 않는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일자리는 더 이상 쟁점이 아니다. 너도나도 잘하겠다며 물타기를 해대 '킬러 어젠다'로서의 위력을 상실했다. 물론 같은 경제민주화라도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 안에 차이는 있지만 유권자는 뭐가 어떻게 다른지 잘 모른다. 진정성이 있니 없니 하는 것도 정권 잡은 뒤에나 불거질 문제다. 현재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를 곤경에 몰아넣는 과거사 인식 문제도 결정적인 이슈는 되지 못한다. 일시적으론 타격을 주겠지만 선거 판세를 좌우할 정도의 메가톤급 이슈라 보기는 어렵다. 어차피 선거가 임박하면 이리저리 윤색하고 매끈하게 다듬어 예봉을 피해나갈 게 뻔하다. 유권자 입장에서 대선은 미래에 대한 가치투자의 의미를 갖고 있다. 어떤 후보를 뽑았을 때 내 미래가 얼마나 나아질 것인지를 판단하고 결정하는 행위다. 과거는 과거지사일 뿐 지지후보를 바꿀 정도는 되지 않는다.

출사표를 던지고 한창 선거운동에 나선 후보들도 선거 흐름을 주도할 만한 이슈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박근혜는 후보로 결정된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이렇다 하게 내세운 이슈가 없다. 지지층이 견고하지만 지난해부터 지지율이 40~45%를 맴도는 이유도 유권자들의 눈길을 확 잡아맬 만한 그만의 어젠다가 없는 탓이다. 엊그제 민주당 후보로 결정된 문재인은 일자리를 강조해 차별화를 시도하지만 거기서 거기다. 노무현을 극복한 문재인 만의 뭐가 있어야 하는데 아직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 안철수를 넘어 박근혜를 이기려면 파괴력 있는 어젠다를 만들어내야 한다.

오늘 지각 출마 선언을 할 예정인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은 어떨까.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대중의 부름을 받아 나오는 그는 다른 후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놓여있다. 기존 정치인과는 완전히 다른 이미지만으로도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구태로 얼룩진 낡은 정치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향후 개혁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만으로도 환호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그에 못지않게 큰 법이다. 에서 제시된 '모범답안'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보다 더 주목을 끌고 감동을 주는 얘기가 나와야 한다. 집권구상은 뭔지, 정치판을 어떻게 확 바꿀 건지, 어떤 어젠다를 가졌는지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한마디로 안철수의 새 정치는 이거다라는 걸 각인시킬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국민 상당수는 정치 경험도 없고 행정도 해보지 않은 안철수의 국정운영 능력에 회의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그런 의문과 궁금증을 풀어주지 못하면 의외로 쉽게 허물어질 수 있다.

미국의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저서 에서 상대의 의제에 말려들면 선거에서 백전백패 한다는 '프레임 이론'을 제시한 바 있다. 안철수는 자신만의 의제, 자신만의 프레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안철수의 오늘이 궁금하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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