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5,906명.'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우리나라 자살자 수다.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로 환산하면 31.7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9년째 이어가고 있다. 특히 심각한 건 젊은층의 자살이다. 20대의 경우 전체 사망자를 놓고 보면 2명 중 1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을 정도로 자살 사망자 비율이 높다. 증가 속도도 매우 빠르다. 10년 사이(2001~2011년) 다른 연령대에서는 60~90%대 증가한 자살률이 20대에서는 116.9%나 늘었다.
'자살 공화국'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홍성태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한국 젊은이들에 만연한 자살을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사회에 의한 절망 자살' " 로 규정했다. 자살은 개인 문제로 국한시켜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그는 "성장을 최고의 목표로 강요하는 '정글 사회' 에서 벗어나야 하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보살피고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고 강조했다. 우종민 인제대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한국의 자살 문제는 정확한 진단이 없어 치료방법이 나오지 않고 있는 만큼 장기적 역학 연구가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는 입장을 내놓았다. 우 교수는 "우선 우울증이 자살 위험요인으로 지목된 만큼 이의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에 대한 사회의 차별과 편견을 없애 원활한 진료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 말했다.
정민승기자 msj@hk.co.kr
● "무한경쟁 내몰리는 '정글사회'의 비극…극단선택하는 절망의 절규 귀기울일 때"
처참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지난 10년 동안 자살자가 계속 늘어났다. 2011년 한 해에만 무려 1만5,906명이 자살했다. 매일 43.6명이 자살한 셈이다. 10년 전인 2001에는 18.9명이 자살했고, 20년 전인 1991년에는 8.6명이 그랬다. 20년 전에 비해 자살자가 무려 5.1배나 늘어난 것이다. 2011년의 자살 사망률(인구 10만명 당 자살자 수)은 31.7명으로 OECD 1위다.
혹시 사망자가 크게 늘어나서 자살자도 크게 늘어난 것이 아닐까? 아니다. 전체 사망원인에서 자살의 순위를 보면 2001년의 8위에서 2011년의 4위로 높아졌다. 지난 10년 동안 전체 사망자에서 자살자의 수가 크게 늘어난 것이다. 자살 사망률로 보면 자살자는 2001년 14.4명에서 2011년 31.7명으로 늘어났다. 10년 동안 인구 10만명 당 자살자가 무려 2.2배나 늘어난 것이다. 자살자가 정말 너무 많다.
이런 자살자의 증가는 사회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무엇보다 먼저 이 나라에서 지배 이데올로기의 위치를 굳건히 차지하고 있는 성장주의와 관련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국내총생산(GDP)은 2001년 651조4,150억원에서 1,237조1,280억원으로 1.9배가 늘어났다. 그런데 같은 기간에 자살자는 2.2배나 늘었다. 이정전 교수가 이미 오래 전부터 '행복 경제학' 으로 지적했듯이 성장이 곧 행복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자살자의 증가는 처절하게 증명해준다.
더욱 놀라운 것은 10~30대의 사망원인에서 자살이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40~50대의 사망원인에서도 자살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바야흐로 한국 사회는 중추 연령층에서 자살이 가장 중요한 사망 원인인 '자살 사회' 가 되었다. 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10대는 학습 경쟁에 몰려 자살하고, 20대는 취업 경쟁에 몰려 자살하고, 30대는 승진과 실업 압박에 몰려 자살하고, 40~50대는 전직과 실업 압박에 몰려 자살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자살자들의 소리 없는 절규에 깊이 귀 기울여야 한다.
오래 전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다. 절망의 종착점은 자살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만연한 것은 사회에 의한 '절망 자살' 이다. 어쩔 수 없는 절망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자살을 감행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살자들은 사람들을 절망 상태로 몰아넣는 한국 사회를 처절히 고발하고 있다. 자살자들은 한국 사회가 사람들을 절망으로 몰아넣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무시하는 처참한 '정글 사회' 라고 외치고 있다.
우리는 사람들을 야수로 만들고 야수가 된 자들이 지배하는 '정글 사회' 의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한국에서 이 문제는 '박정희 시스템' 과 신자유주의의 구조적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박정희 시스템' 은 박정희의 개발독재를 통해 형성된 사회체계로서 친재벌과 반노동의 기반 위에서 강력한 성장주의를 추구한다. 둘의 공통점은 자연과 노동에 대한 착취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성장을 최고의 목표로 강요한다는 것이다. 둘이 결합된 '정글 사회' 는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사람들에게 자살을 강요할 정도로 극히 비인간적이다. 이런 '정글 사회' 는 사회 전체에 불안을 만연시킬 수밖에 없으며, '불안 사회' 는 발전의 전망이 막힌 불행한 사회가 되기 십상이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돌봐야 한다. 그리고 이에 앞서 사람들이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박정희 시스템과 신자유주의를 철저히 개혁해야 한다. 자연과 노동에 대한 착취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오직 더 많은 성장을 향해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사회는 자살을 강요하는 사회가 되고 만다. 하루빨리 이런 후진 상태에서 벗어나서 인간적인 복지국가를 이루어야 한다.
홍성태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 "자살원인 피상적 접근 땐 반짝효과뿐…장기적 역학조사·충동대처 교육 등 필요"
자식을 먼저 보내는 것은 부모로서 가장 가슴 아픈 비극이다. 경제 수준이 높아지고 의료가 발전하면 자식을 잃는 사람들이 줄어들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유사 이래 가장 풍족한 한국 사회에서 왜 불의의 자살 사고로 자식을 잃은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부모들은 우리의 젊은 자녀들이 왜 죽어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모든 문제는 정확한 진단이 되어야 치료 방법을 찾을 수 있을 텐데, 젊은층의 자살은 실증적인 데이터가 없기 때문에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기 어렵다. 이러니 효과적인 처방도 내리기 어렵다.
가장 시급한 대책은 지금부터라도 장기적인 역학 연구를 시작하는 것이다. 1회성 연구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학교, 직장,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20년, 30년에 걸쳐 끈질기게 추적 조사를 하고,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연결해 원인을 분석해야 한다. 최근 미국에서도 모든 건강보험자료와 통계청 사망자료, 국민건강영양조사자료, 임상시험자료를 통합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자.
둘째, 젊은층, 특히 청소년 자살의 특징에 맞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노인에서는 만성질병이나 생활고 등 금방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 때문에 오랫동안 고민하다가 자살을 하는 경우가 많다. 대책도 경제적 지원이나 복지차원의 관리 등이 중요하다. 반면 청소년들은 가족이나 친구 관계에서 느끼는 갈등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삶에 대한 의지는 강하지만 너무나 괴롭기 때문에 그 좌절을 극단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도움을 청하는 몸짓이라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학교와 가정에서는 영어 수학보다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생존 기술' 부터 가르쳐야 한다.
또 젊은층의 자살은 충동적 성향을 띤다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자살을 생각하거나 계획한 뒤 실제 행동에 옮기는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다. 충동적 자살은 자살 사고가 강해지는 급성기를 지나면 행동으로 옮길 위험성이 현저히 줄어든다. 따라서 젊은이들이 힘들 때 빨리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상담과 치료에 연결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셋째, 어른들도 '활인(活人) 기술' 을 익혀야 한다. 자살을 기도하는 자식을 앞에 두고, "나도 네 나이 때는…" 하고 섣불리 훈계하면 안 된다. "그럴 기운 있으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라" 는 식의 접근도 안 된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태도가 중요하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진심으로 도와주려고 한다는 것을 안다면 자살하려는 마음을 포기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자살을 실행에 옮기기 직전까지 "죽을까? 말까?" 하는 고민을 계속한다는 특성도 이해하자. "죽을 거야" 라는 위협적인 말을 하고도 실제 심각한 시도에 이르지 못한 사람에게 "원래 죽을 의지가 없다" , "겁주려고 한다" 라고 섣불리 판단해서 무시하거나 충동성을 돋우는 말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넷째,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에 대한 사회의 차별과 편견을 없애고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빨리 진료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통계청 자료에서 우울증은 젊은층 자살의 위험 요인이라는 사실이 입증됐다. 다른 조사에서도 우울감은 자살생각 및 자살시도의 가능성을 6~11배 증가시키는 위험요인으로 나타났다. 우울증이 있으면 한 번 고비를 넘기더라도 자살을 재시도할 가능성이 높다. 우울증에 대한 집중적인 치료가 필요한 이유다. 그런데 장벽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기록이 평생 남아서 불이익을 받는다고 믿고 있다. 생명보험 가입에도 차별을 받는다며 심지어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진료받게 해 달라는 이도 있다. 진료기록은 개인 비밀이기 때문에 보장된다고 입이 닳도록 설명하지만, 이 같은 선입견 때문에 병원에 가지 않든가, 망설이다가 결국 생명을 잃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자살은 미디어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때문에 자살 방법을 경쟁적으로 적나라하게 보도하는 언론사들의 관행을 개선하는 것도 빠뜨리지 말아야 할 과제다.
우종민 인제대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