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부족한 연습량으로 무대에 서도 되나, 걱정이 많아요. 많이 떨리기도 하고.”
수도 없이 거쳤을 무대이건만 정말 그리 떨리는 마음이 드는 것일까. 부러 엄살을 피워 보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10월 11일 금호아트홀 독주회를 앞둔 한국 피아노계의 ‘대모’ 이경숙(67)씨는 이전과는 다른 특별한 마음으로 이번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요즘처럼 연습이 즐거웠던 적이 없다고도 했다.
6ㆍ25 전쟁 통에 피아노를 시작해 서울예고 재학 중 장학생으로 도미한 그는 명문 커티스 음악원에서 공부했다. 1988년 베토벤의 소나타 32곡 전곡을 비롯해 그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5곡),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19곡),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9곡)을 연주하며 왕성한 연주 활동을 이어 온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초대 음악원장, 연세대 음대학장을 지내며 후진 양성에도 힘 써 왔다.
이처럼 화려한 경력의 이씨가 390석 규모의 작은 공연장에서 열리는 이번 무대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데에는 사연이 있다. 그는 지난 여름을 무척 고통스럽게 보냈다.
“지나 바카우어 국제 피아노 콩쿠르 심사를 맡아 미국에 머물고 있었는데 갑자기 복시(複視) 증상이 나타났어요. 모든 사물이 두 개로 보이니 악보도, 피아노 건반도 둘로 보였죠. 이제 피아노하고는 이별이구나, 싶더라고.”
처음으로 연주를 그만두게 될지 모르겠다 생각한 그는 3개월 간의 공포스러운 경험 후에 “몹쓸 병을 앓은 사람이 회복 후에 새 삶을 사는 것 같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공연은 그가 “항상 가슴 속에 담아 뒀던” 두 곡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그래서 연주회를 취소해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을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다. 그는 “이전의 전곡 연주는 음악교육자를 겸한 ‘반(半)연주자’인 내가 연주력을 알린다기보다 선생의 입장에서 알아야 할 곡을 공부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소나타 8번은 프로코피예프 전곡 연주 때 완전히 매료된 곡이에요.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21번은 10년마다 다시 연주하기로 마음 먹은 곡이고. 두 곡 모두 세월의 더께가 쌓이면 어떻게 다르게 표현될지 궁금했던 곡이죠.”
최근 끝난 ‘예술의전당 음악영재 캠프&콩쿠르’의 심사위원장을 맡는 등 여러 피아노 경연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는 그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젊은 연주자들이 부럽고 존경스럽다”고 한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테크닉만 뛰어난 후배들이 많다 싶었는데 지금은 여러모로 성숙한 연주자들이 많죠. 그래도 걱정은 있어요. 이들이 한때 반짝하고 마는 게 아니라 꾸준히 공부하며 자기 예술성을 살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는 “연주 생활을 평생 해 왔지만 충분한 만족감을 느낀 적이 한 번도 없다”며 “딸(피아니스트 김규연)에게도 급하게 경쟁에 쫓기듯 피아노만 치지 말고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라고 이른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건강을 잘 지켜서 할 수 있을 때까지 연주 활동과 제자 가르치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내 힘만으로 될지 모르겠어요. 하늘의 뜻이 필요한 일이겠지만 그렇게 살 수 있으면 제일 행복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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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기자 jollylif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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